고객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싶은 가치를 제공하는데 아직도 2%가 부족하다는게 현대·기아차의 고백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올해 초 경영 화두 가운데 하나로 '고객최우선경영'을 내걸었다. 앞으로 현대·기아차가 펼쳐나갈 '고객최우선경영'을 3회에 걸쳐 조명해 본다.<편집자주>
세계 최초로 자동조립라인을 설치해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포드자동차.
자동화로 생산시간 단축과 부품 표준화로 원가를 대폭 절감할 수 있었고, 매출은 해마다 기록적으로 늘었다. 이른바 포드시스템은 1910∼20년대 포드자동차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포드의 대량생산체제는 이후 모든 산업에 도입되면서 미국이 산업강국으로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포드는 2006년 126억달러의 순손실을 입었다. 2007년 판매 역시 전년대비 12% 감소한 256만대를 기록, 결국 미국 본토에서 도요타에 밀리는 수모를 당했다. 최근 감원에 따른 비용으로 올해만 10억 달러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힌 데다가 명품차 브랜드인 재규어와 랜드로버도 인도에 넘겨줄 예정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포드가 몰락한 첫 번째 이유를 소비자 욕구보다는 공급자 시각을 우선시한 제품개발정책으로 분석했다. "우리가 제품을 만들면 소비자는 사준다"는 공급자의 오만에서 비롯한 포드시스템의 대량생산방식이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현재 세계 자동차 시장은 만성적 공급과잉 현상으로 레드 오션(Red Ocean)화 되고 있다. 생산이나 판매중심이 기존의 선진시장에서 신흥시장으로 점점 옮겨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EU, 일본 등 선진시장은 다소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BRICs) 시장의 성장 속도는 눈부시다.
공급과잉에 더불어 선진시장의 정체와 신흥시장의 급성장 속에서 전세계, 모든 업체 간 경쟁은 격화되며 소비자 주도 시장으로의 진입이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의 경쟁구도가 '얼마나 많은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느냐'에서 '얼마나 많이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다.
◇경영 패러다임이 바뀐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사진)은 올해 '고객 최우선 경영'을 핵심경영 키워드로 선정했다.
정 회장은 "무엇보다 고객이 원하는 사양의 제품을 원하는 시기, 장소,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고객 최우선 경영이 우선돼야 한다"며 고객 중심경영에 대한 강한 신념을 드러냈다.
이제 고객의 요구는 전통적인 의미의 고객만족을 뛰어넘고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것만으로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만으로는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기엔 부족하다. 지금은 고객의 관점에서 더 나은 즐거움과 감동,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고객가치의 총체적인 관리 시대다.
따라서 신사업의 결정, 조직의 관리, 마케팅에 이르는 총체적인 업무 프로세스, 즉 모든 경영활동에 고객가치의 개념이 접목되고 확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다. 고객 가치는 기업의 가치사슬을 이루는 모든 요소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결정적인 기준이다. 정 회장은 바로 이 점을 간파한 것이다.
사실 현대·기아차그룹의 고객경영은 지난 2005년 태동됐다.
이런 중장기 비전을 바탕으로 정 회장은 지난해 '고객우선경영'을 경영목표로 연구개발, 생산, 판매, 정비 등 모든 경영활동에 고객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것을 당부했다.
올들어서는 고객우선경영을 넘어 고객최우선경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실패에서 배워라
고객과 지속적으로 의사소통하지 않는 기업은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고 만다. 반대로 고객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고객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기업은 고객의 로열티로 인해 또다른 가치를 창출, 장수기업으로 살아남는다.
일본 자동차산업의 '빅3'에 속했던 미쓰비시는 인기 모델 '파제로'와 획기적인 GDI 엔진의 개발에도 불구, 1992년 리콜 은폐사건을 계기로 고객들에게 외면당했다. 그 결과 매년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고객이 권력을 쥐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결과다.
미쓰비시는 1997년 1100억엔의 적자를 냈으며,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2000년 초에는 누적적자가 1조7000억엔에 달했다. 급기야 다임러 벤츠가 지분 34%를 인수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 7월 또 다시 리콜 은폐사건이 불거졌고, 2004년에는 결함으로 인한 인명사고까지 발생해 소비자 불신이 극에 달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쓰비시는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책임회피성 해명을 거듭함으로써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며 "미쓰비시의 몰락은 고객으로부터의 신뢰가 기업의 존속과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힘임을 깨닫게 한다"고 말했다.
반면 혼다는 고객과 공감하는 선진창조 문화를 만들었다.
'혼다의 경쟁자는 도요타가 아닌 고객'이라는 인식은 이미 혼다 직원들의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다. 혼다는 차량 개발시 경쟁사를 벤치마킹하기 보다는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한다. 또 차량개발시 고객만족 달성여부를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시장점유율은 도요타가 1등일지 몰라도, 혁신적인 신제품은 단연코 혼다가 1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고객 최우선 경영, 직원 마인드부터 바꿔라
현대·기아차의 품질은 지난 10년간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 미국시장에서 현대차 초기품질지수는 2002년 28위에서 2006년 3위로 급상승했다. 비록 초기품질에 국한된 자료이지만 세계 정상급 품질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기존의 보유한 차의 브랜드와 동일한 차를 구매한 가구비율로 측정되는 고객충성도 측면에서 현대·기아차는 선진업체에 뒤쳐진다. 스트레티직 비전에 따르면 2006년 고객충성도는 도요타 40.44%, 현대차 22.47%, 기아차 18.88% 수준이다.
결국 현대·기아차는 품질·성능 등 제품력은 크게 좋아졌지만, 판매력은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설명이다. 고객들은 '현대차가 이렇게 좋아졌어'라고 감탄하지만, '이 가격을 지불한 만큼 가치가 있을까' 라는 점에선 망설이고 있다.
때문에 현대·기아차는 '고객 최우선 경영' 목표를 종전 품질경영과 달리 고객이 차를 구매하는 시점부터 최종적으로 폐차할 때 까지의 전 과정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회사가 고객만족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고객이 신뢰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우선 현대·기아차는 임직원 마인드 부터 변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몇몇 부서나 몇몇 사람만 고객 최우선 경영을 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최근 정몽구 회장 지시에 따라 '고객최우선경영'이라는 책자를 발간해 전 임직원에게 배포했다. 현대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가 발행한 이 책은 현대·기아차의 약점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고객가치 창조를 위한 '현대차다움'을 강조한다. 이는 현대·기아차가 고객최우선경영을 실천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비전, 전략, 조직, 프로세스, 시스템을 모두 고객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공유시키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객의 만족도 제고는 단순히 마케팅 부문의 강화로써만이 아니라 조직 내 모든 사람과 가치사슬 안의 모든 파트너가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한 마케터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차는 또 직원들의 고객 우선 마인드를 키우기 위해 전사적인 CS(Customer Satisfaction) 교육 활동에 열중이다. 신입사원 연수기간에 전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사내 CS 강사들이 고객만족 과정을 집중 교육하고 있으며, 매년 전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CS 교육도 성황리에 진행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앞으로 추진중인 각종 고객만족 활동을 강화하며 생산에서부터 판매, AS는 물론 직원 사내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에 걸친 유기적 노력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