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경인기자] "전자제품의 최강국"하면 무조건 일본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현재도 일부분 사실이긴 하나 그 대상이 휴대폰이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외형에선 유럽 업체인 노키아가 패권을 잡았고, 기술면에선
삼성전자(005930)의 행보가 눈부시다.
점진적으로 위축된 일본 휴대폰업계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내수시장에서 근근히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3세대(3G) 휴대폰이 본격화되면서 해외 거대기업들의 일본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어 그나마 밥그릇 지키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현지시간) 일본 휴대폰업계가 해외와 국내 양 시장에서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지나치게 많은 업체수와 보조금 지급 관례 등이 업계의 경쟁력을 좀 먹고 있다고 경고했다.
◇日 휴대폰업계, 내수시장서도 위기
일본 휴대폰업계는 오랫동안 중국에서 시작해 유럽, 그 너머로 텃밭을 넓히는 단 꿈을 꿔왔다. 그러나 오히려 적자에 못이겨 핵심시장에서 잇따라 철수, 그 꿈은 일장춘몽으로 전락해 버렸다.
도시바는 최근 중국시장으로부터 휴대폰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미쓰비시 일렉트릭은 노키아를 비롯한 세계 기업들과의 공격에서 쓰디쓴 패배를 맛 본 뒤 유럽시장에서 퇴각했다. 결국 편안한 국내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일본 업체들은 세계 수요의 약 7%를 차지하는 내수시장에서 독점적 우위를 점해왔다. 일본 2G 휴대폰 네트워크가 독특한 일본산(産) 기술에 기반해, 해외 업체들의 진출이 쉽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일본 휴대폰 사용자들은 고속 3G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글로벌 W-CDMA 표준으로 옮아가고 있다. 해외 기업들이 시장에 침투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의 선도 무선업체인 NTT도코모가 올 회계연도(05년4월~06년3월)의 하반기가 시작되는 10월경 노키아 제품인 3G폰을 런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코모 또한 올 여름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모토로라 폰을 판매할 계획이다.
키무라 미치코 IDC 애널리스트는 "일본 업체들은 내수시장을 가지고있는 한 괜찮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해외 거대기업들이 조만간 국내시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고, 일본 업체들이 내수시장을 잃는다면 그것은 곧 마지막 보루가 함락하는 셈"이라고 평했다.
◇정부 보조금 관행, 오히려 악영향
IT강국 일본의 휴대폰업계를 부식시킨 원인은 무엇일까? NYT는 지나치게 많은 업체 수가 영업과 투자의 효율성을 저해했고,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한 결과 가격경쟁력과 자생력이 약해졌다고 분석한다.
일본의 휴대폰업체는 NEC, 마쓰시타 일렉트로닉, 교세라, 샤프 등을 포함 총 12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업체의 총 출하량은 세계 업계 1위인 노키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제한되고 포화된 국내시장을 두고 12개사가 머리터지는 싸움을 벌이느라 실적은 위축되고 리서치 투자는 분산되며, 생산성 개선도 획득하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 선두사인 NEC와 마쓰시타 조차 지난 회계연도 휴대폰 사업부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가격 경쟁력이 낮은 점도 문제다. 해외시장의 평균 휴대폰 판가는 150~200달러 수준이나, 일본의 경우 400~500달러에 달한다. 일본 업체들은 정부로부터 몇백달러의 보조금을 받아 소매가격을 낮추는데 사용해왔다. 단기적인 이득을 희생해 장기간 소비자들의 사용료를 통해 충당해 온 셈이다.
시마다 요키히코 UFJ 쓰바사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 업체들은 보조금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홈 그라운드에서 게임을 해왔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 적응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카가와 수구루 요노 리서치 인스티튜트 리서처는 "일본에 너무 많은 휴대폰 업체가 있고 모두 좋지 않은 재정상태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 중 일부는 퇴출이 옳은 해답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술적 우위 등 경쟁우위도 뺐겨
일본의 가장 큰 장점은 우수한 고가품과 눈부신 기술력이었다. 그러나 이 두 요소 또한 더이상 일본의 강점이 아니다. 고가품 수요가 큰 선진국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고, 새로운 이머징시장은 저가품 선호도가 높다. 기술적 우위 또한 한국 등 해외업체들에게 빼앗겨버렸다.
미쓰야마 나호코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성숙한 선진국 시장의 극심한 가격 경쟁이 업계의 마진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 등 이머징 마켓의 저가제품 부문은 대규모 수요가 존재하는 곳이지만, 고가품에 대한 수요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NYT는 심지어 일본 휴대폰업계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었던 기술적 혁명 분야에서도 한국 라이벌들에게 뒤쳐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포토-스내핑 기술은 일본 휴대폰업계가 먼저 개발했지만, 카메라폰을 세계에 대량 판매한 것은 삼성전자와 같이 민첩한 타국 기업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카메라폰에 있어 일본 업체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작년 10월 세계 최초로 5-메가픽셀 모델을 런칭했으며, 지난 3월에는 7-메가픽셀 제품을 공개한 바 있다.
수구루 리서처는 "7-메가픽셀 모델이 잘 팔리느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 그런 제품을 소개함으로서 삼성전자가 진보한 기술을 가진 회사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확대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