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증세 반대’ 시위대 의사당 습격…경찰 발포로 10명 사망

20일부터 시작된 증세 반대 시위 격화하며 ‘대혼란’
증세 법안 표결 저지 위해 의사당 난입, 경찰과 충돌
경찰 발포로 10명 사망·50명 부상…건물·차량 불타
  • 등록 2024-06-26 오전 9:31:21

    수정 2024-06-26 오전 9:31:21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증세 반대’ 시위가 격화하며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위대가 국회의사당 난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실탄을 발포했다.

25일(현지시간) 케냐 수도 나이로비 시내에서 한 젊은이가 27억달러를 추가 징수하는 재정 법안에 반대하며 경찰을 향해 최루탄을 던지고 있다. (사진=AFP)


25일(현지시간) CNN방송 등에 따르면 케냐의 증세 반대 시위대는 이날 수도 나이로비에서 국회의사당을 습격해 상원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의회에서 예정돼 있던 재정 법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경찰이 의회로 가는 길을 봉쇄하자 시위대는 저지선을 뚫고 의사당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 고무탄 등으로 대응에 나섰으나 시위대를 진압·해산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실탄을 발포했다.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은 최소 5명이 사망했다고 전했으나, 구급대원인 비비안 아치스타는 최소 10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급대원 리처드 응구모는 총격으로 5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케냐 의회는 세수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27억달러를 추가 징수하는 재정 법안을 추진해 왔다. 케냐는 부채 이자 지급에만 연간 세수의 37%를 쓰고 있는데, 앞서 은중가나 은둥우 케냐 재무장관은 “세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올해 약 15억달러의 세수 부족 사태가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지난 20일부터 나이로비, 몸바사, 나쿠루, 키수무 등 주요 도시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정부의 세금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결집한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생)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부정부패를 위한 예산 책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거리 행진과 함께 재정 법안의 철회 및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의회는 이날 혼란 속에서도 3차 회독을 마치고 찬성 195표, 반대 106표, 무효 3표로 가결했다.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 후 일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의원들은 표결 직후 지하통로를 이용해 긴급 대피했다. 이후 시위는 더욱 격화했다. 시위대가 시청 등 정부 건물에 불을 지르거나 내부에서 의자나 가구 등을 철거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시청 인근 대법원에선 주차된 차량이 불탔으며 인터넷 연결도 끊겼다.

케냐에서 ‘증세 반대’ 시위가 격화한 가운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이복 여동생인 시민 운동가 아우마 오바마(왼쪽)가 25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 국회의사당 밖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최루탄을 맞았다. (사진=CNN방송 캡처)


루토 대통령은 14일 안에 법안에 서명하거나 의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 2024~2025회계연도가 시작되기 때문에 신속한 서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루토 대통령은 이날 시위대의 의사당 습격 이후 대국민 연설을 통해 “법안을 둘러싼 대화가 위험한 인물들에 의해 습격을 받았다”며 “이는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평화적인 시위대로 가장한 범죄자들이 국민과 그들이 선출한 대표, 헌법에 따라 설립된 기관에 테러를 가하고 장악했다”며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적 표현과 범죄는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이복 여동생인 시민 운동가 아우마 오바마가 이날 의사당 밖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최루탄을 맞기도 했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기 위해 여기에 왔다. 케냐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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