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2등급 야생식물… 애기등나무
애기등나무는 작고 약하기로 소문난 식물이다. 꽃과 잎, 열매 모양까지 등나무를 꼭 빼닮았지만 전체적으로 크기가 훨씬 작아서 '애기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크기만 작은 게 아니라 몸도 꽤 나약한 모양이다. 우리나라 남쪽 섬에서 주로 자라는 덩굴나무라고 알려져 있지만, 남해안 섬에서조차 군락을 이루고 사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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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앉아 애기등나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길게 늘어진 샹들리에를 연상시키는 총상꽃차례. 새하얀 꽃잎의 중심엔 샛노란 무늬가 박혔다. 잔털이 뒤덮인 콩꼬투리를 닮은 열매가 꽃잎 뒤로 아른아른 바람에 흔들린다. 잎사귀는 손가락 한 마디보다 짧았다. 등나무와 비교하니 정말이지 작다. "선생님, 이래서 이 녀석 오래 살 수 있을까요?"라고 한마디를 던졌는데, 윤주복씨가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건 알 수 없죠. 이 녀석 그래 보여도 개척정신은 타고난 식물이거든요."
약하다 비웃지 마라… 호기심 많은 '개척식물'
습지(濕地)는 알아보기 쉬운 땅이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땅 위엔 풀만 무성할 뿐, 키 큰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다. 양분이 부족하고 척박한 탓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애기등나무는 바로 이렇게 척박하고 양분이 부족한 산지의 아랫자락에서 종종 홀로 발견되곤 한단다.
"신기하죠? 이런 걸 개척(pioneer) 식물이라고들 하는데, 가끔 불이 난 황폐한 땅에서 하루살이 식물이 자라나고 그다음엔 억새가 잘 자라는 식인 거죠. 이 녀석이 습지의 씨앗 문을 열어주는 첫 개척자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멸종위기 종'이 끝까지 버텨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습지를 벗어나 양화리 방면 길로 차를 타고 달려가던 길, 도로 한가운데서 윤주복씨는 "잠깐 차를 세우겠다"고 말했다.
도로 옆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다양한 덩굴식물들이 엉켜 자라고 있다. 사위질빵·계뇨등·댕댕이덩굴·환삼덩굴·참마·칡·멍석딸기·단풍마·인동…, 대충 어림잡아도 종류가 10가지는 됐다. 그럼 애기등은? "저어기 있네요. 저렇게 크게 자랐죠."
깜짝 놀랐다. 잎사귀도 꽃도 여전히 작은 애기등이지만 줄기가 등나무만큼이나 굵게 자란 모습이 놀랍다. 윤주복씨는 '항우도 댕댕이 덩굴에 넘어진다'라는 속담을 들려줬다. 무척 가늘어 보이는 '댕댕이 덩굴'이지만 알고 보면 무척이나 질겨 항우 장사도 이길 수 있다는 것. "10년 전 여기서 봤던 애기등은 줄기가 무척 가늘었는데, 지금은 울창하게 번식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자랐어요. 나중에 항우장사도 이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생명이 아닌가도 싶어요. 딱 그때까지만 잘 자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멸종위기 종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이 녀석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