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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간 환율 합의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벌어지면 원·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외환시장은 공고했던 1060원 하단마저 뚫리는 것 아니냐고 예상하는 분위기다. 외환당국의 손발이 묶임녀 당장 이번주에 원·달러 환율이 1050원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원·달러 환율은 1063.5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1월25일(1058.6원) 이후 2개월여 만의 최저치였다. 하락의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주 중 원·달러 환율은 18.7원(1082.2원→1063.5원) 하락했다. 일주일 만에 달러화에 대비한 원화 가치가 2%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이면이든 아니든…환율 협의는 사실”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 환율 개입을 금지하는 데 합의했는지를 두고 현재 양쪽의 말이 다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한·미 FTA 개정협상의 성과로 환율 합의를 언급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펄쩍 뛰었다. 한미FTA 협상에 환율이 포함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논의된 적은 있었지만 합의된 게 아니라는 게 한국 정부의 설명이다.
만약 미국의 발표대로 한국이 외환시장 개입 억제를 문서로 약속했다면 이는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미국이 엔화를 강제로 평가절상해 일본의 경제불황을 촉발한 1985년 플라자합의의 한국판이 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플라자합의로 인해 일본은 엔고에 따른 수출에 큰 타격을 받았고, 2010년대 이후까지 장기불황 등 후유증에 시달렸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센터장은 “한·미 양국이 FTA 개정협상의 부속합의든 아니든 간에 환율을 의제로 올린 것은 사실”이라면서 “양국이 공식적인 테이블에서 우리 정부의 환율시장 개입공개를 촉구했다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다. 우리 외환당국의 환율시장 대응이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韓 외환시장 개입공개는 ‘판도라 상자’”
외환시장의 관심은 앞으로 나올 한·미 간 환율 협의의 구체적 내용으로 쏠린다. 기재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한 내역을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은 이달 15일 발표되는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을 지정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에 올라 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국가는 우리뿐이고, 주요 20개국(G20) 중에도 인도나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정도만 안 한다”면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외환시장 영향을 감안해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공개하면 파장이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두언 하나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소규모 개방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경우 당국의 개입공개가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인들의 매도·매수가 쉽고 경제규모 자체도 크지 않아 쏠림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 1050원대 진입 시도할 듯”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이번주부터 원·달러 환율이 1050원대 진입을 계속 시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지난주 역외시장에서는 1060원선이 위협을 받았다. 외환당국의 1060원대 지지 의지를 테스트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환율에는 심리적인 요소가 중요하다. 여건이 받쳐준다면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하락할 수 있다”며 “1060원 하향 돌파가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도 “1050원대 진입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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