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디저트 갤러리(dessert gallery)'를 표방하는 '패션5(Passion Five)'. 쉽게 말하면, 빵집이다. 이 '디저트 갤러리' 주인은 파리바게뜨, 파리크라상, 샤니, 삼립식품 등 다양한 제과·제빵 브랜드를 운영하는 SPC그룹(회장 허영인).
그럼에도 이 집을 그냥 '제과점'의 범주에 넣기는 힘들다. 일단 압도적인 인테리어가 그렇다. 매장 넓이는 660㎡(200여 평)이나, 실제 사용하는 공간은 330㎡(100평) 정도. 문화공간 '로툰다' 자리를 헐고, 이탈리아 건축가 마르코 루키(Lucchi)의 설계로 2년에 걸쳐 재건축해, 지난해 10월 오픈했다. 시설이나 인테리어 소품은 단연 최고 수준이다. 카페 의자는 베르너 펜톤, 조명은 리하르트 휴튼의 것들. 디자인사(史)에 획을 그은 디자이너들이다. 전체 직원은 51명이고, 이중 빵이나 케이크를 만드는 셰프는 36명 수준. 비슷한 규모 빵집보다 3~4배 많다. SPC그룹 내에서 우수하다는 인력을 골라 모았다.
원료는 최고급만 사용한다. 예를 들면 버터. "버터는 지방 함량에 따라 관세가 달라집니다. 지방 함량이 79% 이하면 8%, 80% 이상이면 90% 관세를 물어요. 보통 베이커리에서는 관세 8%짜리 버터를 사용하는데, 저희가 쓰는 버터는 지방 함량이 거의 100%예요. 그러니 똑같이 빵을 만들어도 풍미가 다를 수밖에 없죠."
패션5를 둘러본 한 레스토랑 컨설턴트는 "오븐은 최고라고 꼽히는 프랑스제 '봉갸르(Bongard)'인데, 패션5에서 쓰는 정도 크기면 하나에 1억2000만원 정도 할 것"이라며 "그런 오븐이 한두 대가 아니더라"고 했다. 그는 "개인이 패션5를 오픈하려면 못해도 설비만 30억원 이상, 건물까지 수백억은 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체에서는 투자 비용을 끝내 "말할 수 없다"고만 한다.
이성종 점장은 "우리회사의 경우 '파리 베이커리'에서 '파리 크라상 카페' '파리 크라상 키친'으로까지 발전했지요. 그런데 이제 소비자들이 이것도 지겨워하는 것 같아요.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수용하기 위해 디저트를 타깃으로 삼았습니다"라고 말했다.
SPC 홍보팀 정덕수 차장의 설명을 들으면 패션5가 왜 이런 '출혈' 경영을 하는가가 설명된다. "매출은 오히려 부수적이고, '최고의 제품이란 이런 것이다' 보여주기 위한 매장이지요." 흑자를 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매장을 내기 위해선, 오너 혹은 최고경영자(CEO)의 결단이 필요하다. 정 차장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트렌드를 리드해야 한다는 생각이 누구보다 확고한 분으로, 패션5는 회장의 의지로 만들어진 매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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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핫'한 매장이라도, 청담동에서는 일 년을 넘기는 곳이 드물다. 그만큼 한국 소비자는 주의 지속 시간(attention span)이 짧고 까탈스럽다. 계속해서 새로운 케이크와 초콜릿과 빵을, 최고 수준으로 내놓지 못한다면 언제까지 '트렌디'한 매장으로 남을 지 모른다. 제과업계의 명품 랜드마크가 되고 싶은 '샤니'의 욕망을 구현한 패션5. 그 실험 성공 여부는 1년 쯤 후에나 판가름 날 것 같다. 물론 출발은 성공적이다.
▲ 디저트 갤러리 '패션5' /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
::: 패션5는…
'빵(베이커리)과 케이크(파티세리), 초콜릿, 커피(카페)를 파는 4가지 섹션에 만드는 이들의 열정(passion)이 더해지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패션5로 달았다.
케이크와 초콜릿 등 디저트에 강하다. 딸기 단면이 드러나도록 사각형으로 만든 '딸기 한입 가득!! 케이크(3만8000원)'는 달거나 느끼하지 않아서 한없이 먹을 것만 같다. 달걀 흰자로 만드는 과자인 '마카롱(macaron·1800원)'은 비린내가 나지 않으면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것이 프랑스 '원본'에 다가선 맛이다. '생 다크 초콜릿(2200원)은 달지 않으면서 초콜릿 향이 진하다.
빵은 맛있지만 케이크나 초콜릿에는 못미친다. '버터토스트 뺑드미(6000원)' 등 빵은 대부분 버터나 크림을 넣어 촉촉하지만, 유럽 정통식은 아니다. 바게트도 겉은 바삭하지만, 속살은 부드러운 맛이 떨어진다. 단, 그린 올리브 부메랑, 앤초비 크라상은 별미. 오전 7시30분 열고 오후 9시 닫는다. 연중무휴이나 올 설(2월 7일)에는 당일 하루 쉰다. 전화 (02)2071-9505. 다른 제과점과 달리 사진은 촬영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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