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정두언 “책도 부모님처럼 나를 키웠다”

  • 등록 2016-01-27 오전 8:51:02

    수정 2016-01-27 오전 8:51:02

정두언 의원은 새누리당 3선 중진이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다닌 모범생이지만 그룹사운드 활동을 할 정도로 딴따라 기질도 풍부했다. 행정고시 합격 이후 20여년간 공직활동을 하다가 17대 총선에서 서울 서대문을에 당선되면서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후 같은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역임했다. ‘야당보다 더 야당같은 여당 의원’이라는 닉네임을 바탕으로 중도개혁과 보수혁신을 기치로 내세우는 여권내 대표적인 비주류 정치인이다(사진=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초등학교 시절 집이 어려웠다. 교과서 말고는 사실 읽을 책이 없었다.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나를 위해 어느날 아버지께서 계몽사의 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을 사주셨다. 너무 재미있어서 수십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친척집이나 친구집에서 다른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독서는 내 상상력의 근원이자 원천이었다. 부모도 나를 키웠지만 책도 나를 키웠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여의도에서 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이다. 이미 오래 전에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낸 적이 있다. 또 몇 해 전에는 여권내 비주류 전략가로 본인의 정치철학을 담은 ‘한국보수 비탈에 서다’는 책도 출간했다. 특히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에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할 정도로 책 사랑에 푹 빠져있다.

4.13 총선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정 의원을 20일 서울 서대문 남가좌동 선거사무소에서 이데일리가 만났다. 연일 이어지는 강추위 속에서도 서울 서대문을 유권자를 만나느라 하루하루 녹초가 될 정도로 지친 상황. 하지만 책을 주제로 하는 인터뷰라는 말에 두 말 없이 흔쾌히 응했다. 빨간 점퍼를 입고 지역구 행사를 막 다녀온 정 의원의 책이야기는 60분동안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인문학 서적, 인생을 값지게 살기 위해 필수”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지천인 세상에서 과연 종이책이 의미있을까? 정 의원은 “종이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 의원은 “현대인들이 모바일이나 스마트기기의 단문에 익숙해진 것은 현실이다. 특히 긴 문장은 힘들고 지루해서 잘 읽지 않는다”면서도 “여하튼 책을 보는 사람은 오히려 경쟁력이 생긴다. 책은 상상력의 보고다. 앞으로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출세하는 건 아니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이 나중에 큰 일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을 물었다. 총선 정국이라 책과는 거리가 멀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정 의원이 최근 손에서 놓지 않는 책은 ‘신의 위대한 질문’(21세기북스)이다. 정 의원은 “종교철학이 재미없을 것 같은데 아니다. 되게 재미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들이 다 여기에서 나온다”며 “인문학은 호사가의 취향이 아니다.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까 알겠다”고 답했다.

정 의원은 지인들에게 책 선물을 자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수주의’ ‘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복지국가’ ‘정관의 치’ 등은 시대의 화두와 담론을 담았다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만 책을 줄려면 본인도 읽어야 하는데 주변 지인들의 추천을 많이 받는다. 정 의원이 주로 자문을 구하는 사람은 배철현 서울대 교수, 철학자 탁석산 등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역시 고전만한 게 없다”

어린 시절 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로 책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가 이후 세계위원전 등을 탐독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무협소설도 많이 읽었다. 고교 시절에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 청소년 추천도서라는 이름이 붙은 세계명작을 주로 읽었다.

정치입문 이후 힘들고 어려웠을 때 그를 일으켜 세운 책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고전이었다. 정 의원은 “톨스토이가 고전을 쓴 게 아니라 지금까지 읽히기 때문에 고전이다. 바흐 음악은 당시로서는 대중음악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빅뱅이 부르던 노래와 같다. 지금까지 듣기 때문에 클래식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소설의 효용성도 강조했다. 정 의원은 “우니나라 소설 중 고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얼마 없다”면서도 “황순원, 김동리, 최인훈의 소설을 꼽을 수 있다. 왜 계속 읽히느냐. 이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보편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 책이 우리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은 대체로 비주류 소수파인 경우가 많다. 소외되고 고독한 인간들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면서 “나만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소설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다. 내가 소중한 존재구나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모든 소설이 다 그렇다”고 밝혔다.

“책감옥에 빠지는 시간 해외출장이 즐거웠다”

아무리 책읽기가 좋아도 바쁜 의정활동 때문에 짬을 내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정 의원을 해외출장을 갈 때쯤이면 늘 설렜다. 읽고 싶은 책을 한가득 가지고 가서 상대적으로 맘편하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 정 의원은 “보통 해외출장을 갈 때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국회 활동이나 지역구 일정 등에서 해방됐기 때문”이라면서 “비행기로 장시간 이동하면서도 책을 보고 호텔에서도 방안에 틀어박혀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유난히 대답을 아꼈다. 한참 만에 입을 연 정 의원의 대답은 정말 의외였다. 삼국지, 사기, 논어·맹자 등 고전을 기대했던 기자의 예상은 180도 빗나갔다.

정 의원은 “내 인생 최고의 책은 항상 최근의 책이다. 다 의미가 있다”면서도 “굳이 이야기한다면 계몽사의 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이 최고의 책이었다. 내 평생의 자양분이 된 책이다. 또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서 최고의 책은 ‘권력의 조건’(21세기북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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