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조교수들과 연구실을 같이 쓰다 보니 아침에 커피를 가지고 연구실의 문을 두드리는 제약회사의 영업사원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다른 병원에서는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서 교수연구실을 방문하는 영업사원들도 많다고 한다.
과거에는 저녁식사나 과(科) 회식에 양복 차림의 제약회사 직원들이 계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었던 것에 반하여 쌍벌제 시행 이후에 잦아진 풍경이라고 한다.
작년 국회를 통과한 법률 가운데 의료계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이 의료법 제23조의2(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의 취득금지)-일명 쌍벌제 조항-이다. 지금까지 의료계에서 일정 정도 암묵적으로 이뤄지던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고자 신설된 조항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는 물론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도 의사자격정지는 물론 형사처벌(징역 또는 벌금형과 함께 몰수 또는 추징)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행위는 뇌물죄나 배임수/증재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대가성(뇌물죄의 경우)이나 부정한 청탁(배임수/증재죄의 경우)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아 손쉬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위반으로 처벌하여 왔다.
공정거래법위반의 문제점은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는 처벌을 받음에 반하여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다는 문제점이 여러 차례 지적되었고 이를 입법화한 것이 의료법에 신설된 쌍벌제 조항이다.
제약회사는 왜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들에게 리베이트를 줄까? 약의 소비자인 환자가 약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진료를 담당한 의료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구조적 특수성에 때문이다.
환자가 약국에서 직접 고를 수 있는 일반의약품에 비하여 의료인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판매를 촉진하려는 제약회사의 영업 대상은 소비자인 환자가 아니라 처방권자인 의료인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처방권자가 약의 성분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회사의 특정 약품까지 지정하는 제품명 처방제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의료인의 처방권한은 제약회사의 명운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시장경제체제 아래 판매촉진을 위한 제품가격의 할인, 경품 및 편의 제공과 같은 행위는 그것이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불공정 거래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한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소비자의 권익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특별히 보건의료영역에서 이를 처벌하려는 이유는 뭘까? 현행 보건의료시장에서 리베이트의 규모가 너무 크고 건강보험에서 차지하는 약제비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제조업의 경우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관리비는 매출액 대비 12%정도 임에 반하여 제약업의 경우 30%를 넘고 있다. 이를 금원으로 환산하면 학자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약 4조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또한 리베이트로 인한 의료인의 처방약 증대에 따른 약제비의 가파른 상승이 국민건강보험재정 적자의 주요한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는 현실에서 리베이트의 근절을 통한 약값 거품의 제거와 과잉처방을 통한 약제비 상승을 막아보자는 것이 쌍벌제를 도입한 정부의 입법의도다.
이와 같은 새로운 처벌조항을 제정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식일까? 쌍벌제의 경우 금전, 물품을 포함한 일체의 경제적 이익을 리베이트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앞서 본 커피나 김밥 등도 이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
이러한 것을 리베이트라고 볼 수 있을까? 법령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하위법령에서 허용되는 경제적 이익의 범위를 따로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실무적으로는 허용되는 경제적 이익의 범위를 둘러싸고 제약업계, 정부 및 의료계의 의견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대립은 불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사회적 자원의 낭비를 초래한 원인은 결국 쌍벌제 조항을 제정한 것이고.
직업적 양심에 기초를 하거나 기존의 법 규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으로 충분함에도 새로운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을 택한 사례는 너무 많다.
의료인에 대한 폭력을 처벌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응급실 근무 의료인에 대해 가중처벌을 하자는 입법안, 보건의료기본법에 환자의 알권리에 대한 규정이 있음에도 개별법령에 삽입되어 있는 유사한 조항들, 응급환자에 대한 구조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형사처벌을 완화해 준다는 이른바 '선한 사마리안인 조항' 등. 이 모든 것들은 기존 법령의 엄정한 집행이나 시민의식의 성숙과 같은 것들로 해결될 수 있음에도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한 입법을 시도한 대표적인 예들이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법률의 수가 증가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법률은 기존의 법률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시행한 후 일정 정도의 기간이 경과하였음에도 입법의 공백이 발생하였을 경우 필요최소한의 한도에서 이뤄져야 한다.
예산, 전문가의 시간, 사회적 에너지와 같은 것들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원이다.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법령을 제, 개정하는데 이러한 자원들을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다.
제발 기존에 존재하는 법령이나 제대로 집행하도록 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작년 기준으로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는 법률의 개수만 300여개에 이른다. 여기에 시행령, 시행규칙, 고시, 예규 등을 포함하면 1400~1500여개의 법령이 존재한다.
10년 이상 이 분야의 법률가로 활동해 온 나로서도 이름조차 모르는 법을 만난다는 것이 드물지 않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일까? 자칭, 타칭 전문가인 내가 이렇다면 일반 국민들은 어떨까? 입법활동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국회의원의 실적이나 행정부의 권한 강화를 위한 입법활동은 지양되어야 한다. 새로운 법령을 만들기 전에 제발 다시 한 번 과연 이 법이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가져야 할 때다.
이경권(법무법인 대세,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변호사/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