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폭소… 99분간의 롤러코스터

‘드래그 미 투 헬’
  • 등록 2009-06-12 오후 12:50:00

    수정 2009-06-12 오후 12:50:00

[경향닷컴 제공] 어린 시절 갖고 놀다 버려두었던 장난감을 다시 찾은 기분일까. 젊은 시절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과 우연히 재회한 기분일까.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통해 할리우드의 거물로 성장한 샘 레이미 감독이지만, 그의 첫 장난감, 첫 사랑은 공포영화였다. 11일 개봉한 <드래그 미 투 헬>(Drag me to hell)은 <이블 데드3> 이후 레이미가 18년 만에 내놓은 공포영화다.


마음씨가 여린 은행의 대출 상담원 크리스틴은 공석인 팀장 자리를 놓고 동료와 경쟁 중이다. 추한 외모의 동유럽계 노파 가누시 부인이 대출을 연장해달라며 크리스틴을 찾아온다. 승진 탈락을 염려한 크리스틴은 마음을 굳게 먹고 가누시의 청을 거절한다. 앙심을 품은 가누시는 지하 주차장에서의 혈투 끝에 크리스틴의 외투 단추 하나를 빼앗아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운 뒤 돌려준다. 마녀인 가누시는 무시무시한 악마가 단추의 주인을 3일간 괴롭히다 끝내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가는 저주를 내린 것이다. 크리스틴은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쓴다.

<이블 데드>는 숲 속 외딴 오두막에서의 기괴한 사건을 그린 영화였다. 당대의 사회상을 암시하는 구석이 없었다. <드래그 미 투 헬>은 다르다. 전 지구적인 경제위기의 시대, 벼랑끝에 선 하층민의 고통이 중산층에게는 끔찍한 저주로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화의 근원은 욕망이었다. 크리스틴은 죄없는 희생자가 아니다. 여러 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 다음 계단으로 올라서려는, 평범하지만 커다란 욕망이 그녀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였다. 악마는 인간에 무관심하다. 인간이 그를 불러들이기 전까지는.

그러나 <드래그 미 투 헬>을 공포영화의 틀을 빌린 사회비판영화라 판단하면 오산이다. <드래그 미 투 헬>에는 순수한 공포의 쾌감이 가득하다. 관객의 신경계를 쥐락펴락하는 레이미의 솜씨는 얄미울 정도로 능숙하다. 특히 청각을 이용한 공포감이 압권이다. 중산층의 평범한 주방, 거실의 온갖 가구, 기구들이 관객의 귀를 날카롭게 자극한다. 삐걱이는 소리, 긁는 소리, 끼익끼익 긁히는 소리의 합주가 몰아친다. 만일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드래그 미 투 헬>의 공포감은 3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 터뜨려주는 유머는 레이미의 장기다.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당하고만 있을 크리스틴이 아니기에, 저주를 풀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그녀의 모습은 웃음보를 건드린다. 긴장해 얼어붙었다가 마구 비명을 지르고 금세 폭소를 터뜨리는 관객이 적지 않을 듯하다.

이 영화는 99분의 롤러코스터다. 그러나 대형 테마파크의 규격화된 놀이기구가 아니라 손님 반응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는 월미도의 소규모 놀이기구에 가깝다. 촌스럽긴 한데 후자가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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