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의 직장 해부)③왜 상품권은 넘쳐 흐르나

임금인상 막으니 상품권으로..복리후생비 대부분 상품권 구입에 소진
1인당 수백만원어치 무차별 지급..현금화 쉬워 로비용으로도 제격
  • 등록 2008-08-29 오후 12:10:00

    수정 2008-08-30 오후 3:46:21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공기업에는 늘 상품권이 넘쳐 흐른다. 산업은행 직원들은 작년에 1인당 평균 160만원어치의 상품권을 받았고 석유공사도 1인당 137만원어치의 상품권을 나눠줬다. 증권예탁결제원 직원들은 작년 한해동안 무려 280만원어치의 상품권을 받았다.

기술신용보증기금 임원들도 상품권 부자다. 임원 5명이 회삿돈으로 최근 2년여동안 4000여만원어치의 상품권을 사서 나눠갖고 기밀성 활동비로 썼다가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공기업에 뭔들 넘쳐 흐르지 않겠느냐'는 시각으로 보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공기업들이 이처럼 상품권을 애용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 억지로 만든 수당 현금화하기 좋도록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주는 '피복비'는 업무 특성상 유니폼이나 작업복을 사 입어야 하는 경우 옷 대신 지급하는 돈이다. 그러나 공기업들은 이런 용도의 예산을 직원들 임금을 올려주는 데 활용한다. 유니폼이 필요없는 직원에게 피복비를 나눠주자니 상품권이 제격이다. 사실상 현금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주택보증공사는 작년에 전 직원에게 피복비 명목으로 50만원어치 의류교환권을 돌렸다. 증권예탁결제원도 매년 30만원어치의 의류상품권을 유니폼이나 작업복 착용 여부와 무관하게 전직원에게 일률적으로 나눠줬다. 수출보험공사도 40만원어치 상품권을 피복비로 전직원에게 나눠줬다. 수십만원씩 월급을 더 준 셈이지만 임금총액에는 계산되지 않는다.

이런 상품권을 사는 돈은 어떤 예산에서 나올까. 각종 행사비와 복리후생비, 사내복지기금이 그 원천이다. 증권예탁결제원은 창립기념일에 전 직원에게 상품권 100만원어치를 나눠준다. 이를 위해 작년에 회사에서 한꺼번에 구입한 상품권이 4억3900만원어치다. 인건비가 아닌 다른 예산에서 돈을 빼내 직원들에게 100만원씩 보너스를 준 것과 다름 없지만 겉으로는 '창립기념일 행사를 성대하게 했다'는 것만 남고 임금총액에도 계산되지 않는다.

관계자는 "직원들 월급을 100만원씩 올려주면 눈치가 보이지만 행사비용에서 떼어 상품권으로 나눠주면 같은 효과를 거두면서도 눈총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상품권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 상품권은 총액임금서 제외..눈가리고 아웅

정부가 공기업들의 총액임금 인상률을 규제하고 있지만 인센티브 상여금(인센티브성과급 및 특별성과보상금), 직책수당을 제외한 모든 수당, 복리후생비(휴가보상금, 국외중식대, 자가운전보조비, 학자보조금 등), 기타소득(근로자의 날, 창립기념일 등에 예산에서 전 직원에게 지급하는 상품권, 각종 포상금 등) 등은 총액임금에서 제외한다. 이런 규정을 악용해 공기업들은 핑계만 생기면 상품권을 뿌린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예산에서 18억6200만원의 복리비를 집행했는데 이중 17억7000만원을 상품권으로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주는데 썼다. 복리비라기보다 상품권 구입비로 계정을 바꾸는 게 어울린다.

마사회도 노조가 매출증대에 따른 격려금을 달라고 요구하자 지난해말 1인당 15만원어치씩 상품권을 돌렸다.  

사내근로복지기금도 상품권 구입비를 꺼내쓰는 좋은 금고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은 공기업이 직원들을 위해 순이익의 5% 이하로 적립할 수 있도록 해서 조성하는 기금이다.
 
1%를 적립할 수도 있고 3%를 적립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공기업은 당연히 그 한도를 채워 순이익의 5%를 적립한다. 사내복지기금 적립액을 늘리기 위해 순이익을 부풀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감사원 관계자는 "사내복지기금은 용도가 정해져있어서 직원들에게 현금으로 나눠주기 어렵기 때문에 각종 핑계를 만들어 상품권을 나눠준다"고 설명했다.

▲ 주요 공기업들은 순이익의 일정비율을 적립해서 직원들 복지에 쓰는 사내복지기금이 1인당 수천만원씩 적립되어 있다. 언제든지 직원들에게 줄 수 있는 숨은 자금인 셈이다. 복지기금에서 직원 1인당 지원하는 금액도 2003년 158만원에서 2007년 283만원으로 4년만에 80% 증가했다



 
◇ 상품권 '깡'해서 현금화..어디에 썼을까 

음성적인 로비에도 상품권은 제격이다. 일반적인 거래관계에서 공기업은 대부분 `갑`의 위치지만 규제나 각종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있는 관계기관이나 담당 공무원에겐 분명한 `을`이다. 국회와 언론사 등 눈치를 봐야 할 기관도 적지 않다. 
 
증권선물거래소는 2006년과 2007년 직원들끼리 유흥주점과 골프장 등에서 2억여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관계기관 공무원이나 언론사 기자들과 업무협조 설명을 했다고 회사에 허위보고했다가 적발됐다. 허위보고 자체 보다 공무원이나 기자를 접대했다는 보고가 통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공기업과 공무원·언론과의 먹이사슬 구조가 감지된다.

상품권은 이런 용도에도 교묘하게 활용된다. 기술신용보증기금 임원들은 업무추진비와 광고선전비 예산에서 4070만원을 꺼내 상품권을 구입한 뒤 840만원어치를 현금으로 바꿨다. 이른바 '상품권 깡'을 한 셈이다. 이 현금을 어디에 썼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기보 측은 "개인이 착복한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내부적으로는 그 용도를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고만 해명했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은 나머지 3200만원어치의 상품권도 임원 5명이 '알아서' 사용하도록 했다. 감사원은 그 용도까지 추궁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상품권은 대량구입할 경우 5% 가량 할인구입이 가능하다는 점도 상품권을 선호하는 이유다. 이른바 세금계산서에 잡히지 않는 상품권 '덤'을 주는 셈인데, 공기업들은 이런 '덤'도 요긴하게 쓴다.

증권예탁결제원은 노조창립기념일에 직원들에게 나눠줄 상품권을 구입하면서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사용했는데 전현직 사장 등 임원들이 사내근로복지기금 수혜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상품권을 구입할 때 '덤'으로 받은 상품권을 챙겨놨다가 전현직 임원들에게도 상품권을 나눠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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