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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스크’ 등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웨스턴디지털은 발 빠른 제품화로 올해 1분기 일본 도시바를 제치고 마침내 낸드 시장 2위로 올라섰다. 갈길 바쁜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인수와 씨게이트 합작 등을 통해 3D낸드 기술 개발과 판매망 확대라는 투트랙 전략에 승부수를 던졌다.
◇韓 ‘3D 적층기술’·美 ‘제품화 속도’서 각각 우위
3D낸드 기술 경쟁은 도시바의 파산 위기로 사실상 삼성전자·SK하이닉스·웨스턴디지털 등 3파전으로 압축됐다. 한국 기업들이 80%를 점유한 D램 시장은 전통적 PC 수요 감소 등으로 시장 확대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반면 낸드플래시 시장은 AI(인공지능)·VR(가상현실)·AR(증강현실) 등 첨단 기술이 모바일 기기와 결합하며 SSD 수요가 급증,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낸드 분야는 삼성전자가 30% 중반대 점유유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SSD만 국한해서 보면 절대 강자가 없는 상태다.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64단 V낸드(3D낸드) 양산에 성공한데 이어 고정 거래선을 중심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또 올해 들어 업계에서 가장 먼저 5세대 96단 V낸드 개발을 시작해 현재 진행 중이다. SK하이닉스는 비록 4세대 3D낸드의 개발 속도에선 삼성전자보다 뒤졌지만 64단을 건너뛰고 곧바로 72단 개발에 성공, 충분한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올해 2월 도시바와 기술 합작으로 64단 3D낸드 시험 생산에 성공한 웨스턴디지털은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소비자용 SSD 제품화에서 한국업체들보다 앞서나가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지난달 말 ‘샌디스크’와 ‘WD’ 등 2개 브랜드로 각각 64단 3D낸드 기반 소비자용 SSD 제품을 출시했다. 올 3분기부터 본격 시판에 들어갈 이들 제품의 가격도 12만 9000원부터로 저렴하게 책정했다. 웨스턴디지털은 브랜드파워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워 SSD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3세대 48단 SSD제품까지만 출시한 상태로 두 곳 모두 올 하반기에나 4세대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3社·3色 낸드 전략…도시바 인수전이 시장 변곡점
도시바 인수전과 맞물린 낸드 분야의 전략 및 사업 방향도 3개 회사가 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 3곳 중 가장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회사는 역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 양쪽 분야에서 모두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매출 비중도 ‘6대 4’ 정도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또 3D낸드 제품은 모바일용 뿐 아니라 SSD도 20%대 시장점유율로 업계 1~2위를 달리고 있어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의 매출 비중이 ‘8대 2’ 정도로 D램 의존도가 삼성전자에 비해 훨씬 높다. 또 낸드 중에서도 모바일용 제품 비중이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메모리 매출에서 SSD가 차지하는 비중은 5% 이하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업계 2위인 D램보다는 시장 점유율 10% 정도로 세계 4~5위권인 낸드 분야를 키워야 지속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특히 매출 비중이 낮은 SSD는 브랜드파워 강화 및 판매망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인수를 통해 3D낸드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 등 스토리지분야 강자인 씨게이트와의 합작 추진을 통해 판매망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HDD 시장의 급속한 쇠퇴로 한국시장에서 철수한 씨게이트와의 합작이 얼마나 시너지를 낼지는 미지수다. 또 도시바 인수전은 미국 투자펀드인 베인캐피탈과 손잡고 51% 지분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어,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실익이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도시바와 합작관계인 웨스턴디지털은 지분 100%를 인수해 사실상 합병 효과를 거둘 수 있어, 곧바로 삼성전자과 양강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인수전에서 승리하더라도 실제 갖게 되는 도시바 지분이 20~30% 선에 그쳐 기술 제휴 이상의 효과를 거두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치킨게임 성격이 강한 메모리시장에서 도시바가 몰락하고 낸드 시장이 3파전으로 좁혀지면, 한국업체 입장에선 어쨌든 점유율 확대 여지가 생기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