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제공] 이등분, 또는 삼등분 된 화면에 사람의 얼굴이나 우산, 부츠, 의자 등이 둥둥 떠다닌다. 연관성 없어 보이는 사물들이 서로 섞여 언밸런스의 묘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는 판화에 드로잉 붓질 작업을 거친 후 오브제를 활용해 완성해나가는 함영훈 작가(35)의 작품들이다.
사물들을 결합시키는 과정을 통해 예정치 않은 즉흥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 함 작가의 작업 스타일인 셈. 함 작가는 이것을 ‘그루브’(Groove)라고 하는데, 흑인음악이 가지고 있는 엇박자의 독특한 흥겨운 리듬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날 라디오 DJ가 말하는 ‘그루브’라는 단어에 솔깃해지더군요. 그루브라는 음악 용어가 제 작업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깊이감을 느낄 수 있는 판화에 여러 오브제를 중첩시켜 회화처럼 만들어 이질감을 주는 함 작가의 작품들은 그루브의 리듬과 비슷하다.
강압적으로 작품을 이해시키고 메시지를 강요하기보다 관람객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열린 체계(화면)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게 함 작가의 설명이다.
이렇게 매개체를 이용한 작가와 관람객의 소통을 시도한 덕분일까. 지난 2일에 끝난 청담미술제에서 함 작가의 작품들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의 작품 19점 중 12점이 팔렸으며, 지난 3월 전시에서는 9점 모두 팔려나가 함 작가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발휘된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50호~100호 크기의 큰 작품들로 연작 시리즈를 구상중이라고. 10월에는 네덜란드에서 전시를 열기 위해 현지 화랑 관계자들과 조율하고 있다.
“판화의 매력은 붓으로 흉내낼 수 없는 색감과 중량감, 독특한 표면이에요. 표면에 긁힌 자국을 만들거나 표면을 겹겹이 칠해 형성된 이미지들을 한 데 모으는 판화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 할 겁니다.”
작품에 그루브라는 음악용어를 붙일 만큼 음악에 대한 애착도 남다를 것 같다고 하자 함 작가는 90년대 초반 재즈문화에 젖어든 기억을 들려주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해요. 하지만 작업할 때는 절대 안 들어요. 여가시간에 듣고 그 감성을 생활 속에 묻어뒀다가 작품을 위해 끌어내는 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