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정복했던 페르시아를 이긴 것에 불과하다. 페르시아는 바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의 조상들이다.
또 하나의 예가 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은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의 발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슬림의 눈으로 봤을 때 유럽의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증기기관의 활용 때문에 촉발된 것이었다. 이미 15세기 이슬람 세계에서는 증기기관으로 쇠꼬챙이를 돌려 양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먹었기 때문이다.
책이 나오게 된 데에는 9·11 테러가 원인이 됐다. 9·11로 인해 서구의 언론이나 유대세력들은 이슬람 사회를 폭력집단으로 그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쪽을 모두 경험한 저자로서는 그 상황에 대해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유도한 가장 큰 원인은 서구사회가 이슬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슬람의 역사를 이슬람인들 스스로 서구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따라서 저자가 책을 쓰며 가장 중요시한 관점은 역사의 `내러티브`다. 즉 이슬람 세계와 서구는 서로 따로 존재하는 두 개의 우주 같았고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갖고 흘러가고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혁명들은 서구가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통해 그들의 내러티브를 이슬람에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사하는 바는 많다. 특히 현대 세계를 파괴하는 갈등을 ‘문명의 출동’로 이해하기보다 서로 맞지 않은 두 줄기의 세계사가 교차하며 발생한 마찰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는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공감이 된다. 충돌은 둘 중 하나의 파괴를 뜻하지만 마찰은 상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