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株소설]"안갯속 창과 방패 대결"…메모리社 vs 서버 고객

삼성전자 등 메모리社, 지난 4일 이후 하락세
현물가, 고정가 하회하는 '데드크로스', PC 수요 하락 등 확인
하이퍼스케일 서버社, 고의 '더블 부킹' 통해 협상력↑
메모리社, '서플라이 스퀴즈'로 방어
"코로나는 'Just in case' 무의미…안갯속 싸움"
  • 등록 2021-08-17 오전 9:40:13

    수정 2021-08-17 오후 9:32:09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메모리 공급사를 중심으로 한 이번 반도체 관련주 급락은, PC 디램(DRAM) 가격이 생각보다도 더 가파르게 하락할 거란 내용이 확인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4분기를 정점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 사이클이 내리막에 들어선다는 예상이 예전부터 나왔지만, 이번엔 일부 기업의 얘기가 밖으로 나온 적은 처음이고 또 하락 폭도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버 고객사와 관련돼 있단 분석도 있습니다. 전에 없던 바게닝 파워(Bargaining Power)를 지닌 서버 고객사의 전략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메모리 공급사의 가격 협상력을 흔들고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렸다는 것입니다.

(출처=구글)
“메모리社, 내년 실적 전망 내려갈 것”

세계 메모리 3대 업체인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마이크론(MU)은 최근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4일부터 내리기 시작, 지난주(9~13일) 내내 하락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13일 연중 최저 수준인 7만4400원으로 마감했습니다. 지난달 7만8500원에서 4일 8만2900원까지 상승하며 ‘8만전자’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투자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다만 상승 당시에도 펀더멘털에 기인한 게 아니란 해석은 있었습니다. 순환매 국면에서 빅테크 업종 다음 차례를 맞이한 것이며, 규제 바람이 분 중국을 피한 신흥국(EM) 자금이 일부 코스피로 몰렸다는 해석이 나온 바 있습니다.

반도체주 급락은 메모리 가격이 올 4분기 정점을 찍고 내린다는 가정이 시장에 만연해 있는 가운데, 이러한 예상이 실제 확인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지난주 초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최근 8기가 DDR4 현물가격(Spot)이 고정가격(Contract)을 하회하는 데드 크로스가 발생했습니다. 7월 대만 노트북 ODM 출하량은 1550만대를 기록하며 전월보다 5% 줄었습니다. 대만의 에이데이타(Adata) 등 모듈사들은 디램 업체들에 추가적인 현물가 하락을 전망하며 공급가 하락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듈은 여러 개의 디램을 모아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만든 제품입니다.
(출처=하이투자증권)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모듈 업체들과 대화를 통해 현물시장 채널 체크를 진행한 결과, 최근 마이크론의 관계사인 모듈업체 크루셜(Crucial)로부터 저가 판매 물량이 나오고 있고, 대만 노트북 출하는 줄고 있다”며 “유통업자들의 디램 재고는 여전히 낮으나 현물 시장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모듈업체들의 평균 재고는 올해 연초 6주 수준에서 빠르게 상승해 현재는 12주 수준에 달하고 있는 걸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은 메모리 공급사의 내년 실적과 목표주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직전 16만5000원에서 13만원으로 하향 조정하고 2022년 영업이익 추정치는 종전 14조4000억원에서 10조8000억원으로 내렸습니다. 올 4분기부터 6개월 동안 디램 가격을 15% 하락하고, 내년 2분기부터 연말까지 반등하지 못한다는, 가혹한 시나리오를 적용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PC 디램 현물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처에서는 가격이 더 하락하길 기다리는데, 이는 내일이면 가격이 더 내리는 데 굳이 재고를 오늘 채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며 “이번 주 SK하이닉스의 내년 영업이익 컨센 하향 조정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블룸버그 기준 컨센서스가 17조2000억원으로 아직 높아 보인다”라고 전했습니다.

“점유율 하락 책임질 의사결정권자는 없다”

올 초부터 삼성전자가 계속 7만~8만원대에서 횡보하는 이유는 ‘4분기부터 디램 가격이 내린다는 하락 사이클이 찾아온다는 예상’으로 설명됐습니다. 데드 크로스와 전망보다 낮은 수준의 전자제품 수요, 공급사와 고객사 간의 실제 계약 내용이 확인되고 있지만, 이번 반도체주 폭락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메모리 가격 하락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진 못했지만, 가격 방향성이란 측면에선 예상하고 있던 바가 아니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어보입니다. 서버 고객사가 메모리 공급사와의 가격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지 모른다는 우려입니다.

메모리는 크게 PC, 모바일, 그리고 서버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이중 서버는 가장 많은 양을 주문하는 수요처입니다. 클라우드 서비스 등 4차산업 혁명과 관련된 분야가 성장하면서 아마존(AMZN), 마이크로소프트(MSFT) 등 빅테크 업체들은 지속적으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증설하고 있습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연면적 2만2500㎡ 수준의 규모에 최소 10만대 이상의 서버를 갖춘 데이터센터로 정의됩니다. 공급사 입장에선 VIP에 해당하는 고객이 바로 이 서버를 주문하는 업들이 된 것입니다.

문제는 VIP 고객들의 힘이 막강하다는 데 있습니다. 메모리사는 삼성과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이 세 개 기업이 거의 독과점하다시피 할 정도로, 그간 본인들이 원하는 가격대에서 고객사들과 협상해왔을 겁니다. 워낙 많은 양을 한꺼번에 주문하는 하이퍼스케일 서버 고객이 생기면서 견고한 협상력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안 팔고 말겠다’는 식의 태도로 임했다간, 매출의 큰 비중을 경쟁사에 뺏기게 됩니다. 이번 반도체주 하락에도 이러한 메모리 공급사의 협상력 감소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PC 디램 하락이 촉발한 불안 심리가 약한 고리를 흔들었을 수 있단 얘깁니다.
(출처=메리츠증권)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서버 업체들이 공급사를 어떠한 방법으로 흔들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디램 수요는 즉각적인 변화가 가능하지만 공급 변화는 막대한 관성을 지니고 있고, 수요자들은 이를 이용하고 있다”며 “서버 업체들은 공급 부족 국면에서 의도적인 이중, 삼중 주문(더블 부킹)을 통해 수요 분배를 특정시기에 집중시켜, 공급자들의 재고 감소 착시를 유발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향후 재고 소진 여부는 외부 파악이 어려운 까닭에 구매자들의 가격 협상력은 지속 가능한 반면, 공급자 입장에선 생산 준비의 장기화로 인해 자본적 지출(캐펙스·Capex)을 상향 조정하고 이는 경쟁사를 자극한다”며 “공급사들이 캐펙스를 늘리지 않는 식으로 방어할 수 있지만, 자칫 증설을 택한 경쟁사에 점유율을 뺏길 수도 있고 이같은 상황을 책임지고 싶은 의사결정권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전략적 주문을 낸 서버사들은 향후 ‘공급사들의 케펙스 증가’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의도적으로 오더컷(부품 주문 축소)을 할 수 있습니다. 수요를 갑자기 확 줄이면, 가뜩이나 공급이 늘어난 상태에서 디램 가격은 더 가파르게 하락할 것입니다.

‘코로나’라는 안갯속

다만 이는 아직까진 가정에 불과합니다. 공급사들도 가만히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지난 2016~2018년 반도체 가격 급등 때 공급을 늘렸다가 하락 사이클을 앞당기는 낭패를 본 바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하반기 생산 증가가 나타났지만, 증설이 아닌 이미 보유한 공장의 가동률을 최대한 쥐어짜는 방법, 즉 서플라이 스퀴즈(Supply squeeze)를 통한 것이었습니다. 증설을 한다 해도 이는 DDR4에서 DDR5로의 전환 등을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서버 업체에 휘둘렸기 때문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DDR5는 웨이퍼 한 판에서 만들 수 있는 수량이 DDR4보다 작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산 능력(CAPA) 확대가 따라야 합니다.
(출처=픽사베이)
그리고 공급사와 고객사 간의 싸움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느냐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19입니다. 종식보다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엔데믹(endemic)이 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인류가 코로나를 완전히 극복한다고 가정해도 전보다 경제가 성장해 더 많은 메모리를 쓸지 미지수입니다. 공급사나 고객사나 세상에 얼마나 많은 반도체가 필요할지 코로나란 변수가 있는 상황에선 예측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제조업은 그때의 필요에 맞춰 생산하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에서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만약에 대비한 저스트 인 케이스(Just In Case)로 발전했지만, 코로나란 케이스에 대비하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끝나면 경기가 그전보다 회복할 수 있을까, 풀어놨던 돈이 무너지며 경제 위기가 닥치진 않을까, 선진국은 회복하겠지만 신흥국도 이를 따라갈 수 있을까, 인도는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라며 “저스트 인 케이스는 향후 1~2년의 미래의 불확실성을 다루는 영역인데 지금은 어떤 걸 가정해야 하나, 비즈니스상 역대급으로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미래는 한 번도 예측 가능한 적이 없고, 이러한 걸 알면서도 반도체 업계는 그간의 관록과 인사이트를 갖고 대응해 왔는데, 지금은 공급사나 고객사 모두 알 수 없는 안갯속에서 싸우는 것이다”며 “다들 단기적으로만 대응하고 있고, 현재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이다 아니다를 논쟁하며 긴축을 해라 말라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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