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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革命)은 원래 좀 노는 것이다. 치기(稚氣)가 없으면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루지 못할 이상(理想)을 당초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 혁명을 논하지도 행하지도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건 어쩌면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일종의 유희(遊戱)의 매체다. 매번 심각하게 굴면 사람들은 영화를 보려 하지 않는다. 너무 진지한 얘기는 만드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그래서 영화도 종종 ‘논다.’ 혁명도 놀고, 영화도 논다. 혁명적인 것은 영화적인 것이고 영화는 곧 혁명이 된다.
이준익의 걸출하면서 유쾌한 신작 <박열>을 보면 유희의 혁명론을 말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명명백백하게 영화 전편에서 넘쳐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박열>은 1920년대 일본에서 활동했던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열에 대한 일종의 전기 영화이다. 이런 얘기만이라면 사람들은 이 영화가 사명감으로 가득하고 긴장감이 팽팽할 것으로 생각한다. 잔혹한 고문의 장면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준익은 정반대로 간다. 영화 전편은 이준익의 웃음기로 가득하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영화가 장난스러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까지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장난스러움’이 맞다. 아나키스트의 혁명은 유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익살과 유머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웃으면서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그건 바로 스스로, 곧 자신 홀로 선택하고 감행해 낸 자유의 거사(擧事)이기 때문이다. 슬퍼할 이유가 없다. 영웅이 될 필요도 없다. 그런 점들이야말로 이준익이 고증(考證)을 통해 밝혀 낸 아나키스트 박열의 진짜 모습이다. <박열>은 윤색하고 있는 척, 사실은 있는 그대로 박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이 그러지 않는 척 애쓰고 있지만, 진실의 혁명론, 더 나아가 지금 시대에 진실로 필요한 혁명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왜 지금 우리에게 박열인가. 그 질문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도 그래서, ‘의도된 가벼움’으로 질주한다. 인력거 기사로 날품을 팔며 살아 가면서도 세계의 붕괴와 해체를 꿈꾸는 아나키스트 박열은 동인지 ‘조선청년’에 시를 쓴다. <개새끼>이다. 첫 문장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로 시작하는 시이다. 일본 근현대 작가의 시조(始祖) 급으로 얘기되는 나쓰메 소세키(1984년~2004년까지 1천 원 권 엔화의 초상으로 사용됐을 정도로 일본 문단을 상징하는 인물이다.)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식민지 청년의 울분을 담아 풍자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통쾌한 자작시는 그에겐 평생의 연인이자 아나키스트 동지인 일본인 여성 가네코 후미코를 만나게 해준다. 영화 <박열>은 박열과 후미코의 만남, 그 불꽃 같은 사랑의 얘기를 축으로 독립운동을 넘어 세계 혁명을 꿈꿨던 한 식민지 청년의 놀라운 이상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매번 농담을 주고 받으며.
사실 박열은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 역시 1920년대 일본을 풍미했던 아나키즘 사상에 경도된 젊은이였을 뿐이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당시는 제국주의, 특히 일본 천황의 제국주의는 그 야만성이 점점 더 극에 달해 가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에 맞선 모든 조직 운동도 지나치게 백가쟁명화 하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볼셰비키는 혁명의 완성이라는 놀라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이념의 미명(美名)하에 일당 의 시스템을 구축하던 때였다. 사람들은 자유롭기 위해 싸워 왔으나 투쟁하면 투쟁할수록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 아나키즘은 너무나 매혹적인 사상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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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열은 겁 없이 날뛰는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 어른을 깜짝 놀라게 하는 무서운 아이)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그가 불령사(불령선인, 곧 불량하고 불온한 조선인들이라는 뜻으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썼던 이 말을 박열은 오히려 자신들 운동 조직의 명칭으로 사용했다.)를 만든 것도 조직적 투쟁보다는 풍자와 해학을 통한 반항 정도로 보일 정도다. 물론 이들의 목적은 단일대오의 ‘무엇’이긴 했다. 일본 천황을 암살하겠다는 것이이들이 목표였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그게 영 미덥지가 않다. 박열은 상하이에서 사제 폭탄을 들여 오려고 노력하고, 또 실제로 들여 오기도 하지만 폭탄 자체가 워낙 변변하지 못하다. 제대로 돈을 내고 들여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아직 젊다. 혁명이 낭만인 나이다. 로맨스로 보일 나이다. 박열 역시 당시에는 투철한 혁명가가 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던 셈이다. 이준익의 연출은 바로 이 점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 열정의 순수, 때묻지 않은 아나키즘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영화는 폭탄을 다루지 않는다. 총격과 추적, 고문을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독립운동의 처절한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당시 일본에서 벌어진 조선 청년의 피끓는 독립운동의 요체, 알멩이처럼 느껴진다. 진짜 그때 그랬을 것이라는 역사적 추정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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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어쩌면 지난 시대에 그토록 타올랐던 혁명의 열정이 왜 또 그렇게 쉽게 꺼지고 사라졌는 가를 얘기하려는 작품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 모두는 지난 시절을 지내면서 변절하고 말았다. 얼굴에 쌍심지를 켜고 독립운동을 시작한 사람들 가운데 일제의 밀정이 된 사람들이 많다. 7,80년대의 프락치들 상당 수가 학생운동을 했던 자들이다. 현실 정치를 하는 상당 수의 극우 반동 인사들이 과거에 혁명을 꿈꿨다는 소리를 하고 다닌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프랑스 6.8혁명의 기수들도 변심했다. 독일 바더 마인호프의 테러리스트들, 일본 적군파들, 미국의 웨더 언더그라운드 그룹의 일원도 초심의 혁명 정신을 까먹고, 내팽개치고, 생각을 완전히 뒤바꾼지 오래다. 박열처럼 놀면서 혁명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준익은 말한다. 어쩌면 자신의 그런 생각, 박열을 따라 가는 것이야말로 지금 시대에 가장 올바른 정치적 태도일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영화 <박열>은 바로 그런 시의성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감독은 결국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이다. 그건 그가 흥행감독이냐 아니냐와는 상관 없는 얘기다. 감독이라면 자기 숙원(宿願)의 영화 한편 쯤을 늘 가슴 속에 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건 그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이준익은 아나키스트다. 아나키스트 영화, 아나키스트를 다루는 영화를 만드는 건 그의 영화적 과업이었다. <박열>로 그는 그걸 이뤘다. 그렇게 성취를 이룬 만큼 이준익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점점 더 걸작의 완성을 향해 다가 가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점을 반기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그렇다.
◇[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은 영화평론가 오동진과 함께합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상세하다 못해 깨알같은 컨텍스트(context) 비평을 꿈꿉니다. 그의 영화 얘기가 너무 자세해서 읽는 이들이 듣다 듣다 외치는 말, ‘닥쳐라! 영화평론’. 그 말은 오동진에게 오히려 칭찬의 글입니다. 글이 좋은 분들은 ‘닥쳐라!’ 댓글을 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