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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최강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언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고(故) 박종철 열사의 친형 종부씨는 “여러분 쓰러지지 맙시다, 우린 반드시 승리합니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발언을 마친 그는 결국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보였다.
지난 1987년 1월14일, 당시 서울대생 스물 셋 청년 박종철 군은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 끝에 숨을 거뒀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턱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며 그의 죽음을 쇼크사로 조작·은폐하려 했지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의 노력으로 진실이 밝혀졌다. 그의 죽음은 6월 항쟁을 촉발한 불씨가 됐다.
30년의 세월…촛불과 만난 박종철
꼭 30년이 흘러 박종철 열사와 ‘박근혜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이 만났다.
이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김찬휘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대표는 “제 친구 종철이가 30년 전 경찰의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입을 열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란 꿈과 신념을 지녔기 때문”이라며 “광장에 모인 여러분들도 종철이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종철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끝까지 함께 하자”고 강조했다.
6월 항쟁 당시 거리시위에 나섰다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숨을 거둔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임씨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추모했다.
미완의 혁명 되풀이 안 돼…촛불 혁명 완수해야
주최 측은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미완으로 끝난 6월 항쟁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촛불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6월 항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사실상 미완의 혁명”이라며 “당시 시민들이 헌법을 바꾸고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수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지금까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서는 것은 6월 항쟁에 담긴 미완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박근혜 정권이 완전히 퇴진해 실질적인 촛불 혁명이 이뤄지는 그 날까지 움직임을 멈추지 말자”고 주장했다.
주최 측은 이날부터 오는 6월까지를 ‘민주항쟁 30년 사업’ 기간으로 선포하고 각종 추모 및 기념 행사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앞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 앞에서 ‘민주열사 박종철 30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에 마련된 박종철 열사의 묘역에도 추모객 200여명이 방문해 고인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