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출입기자들에게 물어 보면, 그날 쉬는 직장인들이 유독 자기들뿐이어서 그랬는지 꽤나들 심심했다고 한다. 모처럼 늦은 아침을 먹고 집 근처 산에 혼자 올라 갔다가 경쟁자이자 동료인 다른 신문사 기자들을 우연히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다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대학에 다니는 큰 아이의 복수전공이 아빠의 영향을 받았는지 반갑게도 ‘언론정보학’ 이라 한다. 요즘이 1학기 중간 시험을 앞둔 때여서 컴퓨터 앞에서 밤 늦도록 리포트 쓰느라 정신 없는 듯 보인다. 지나가며 흘깃 리포트 제목을 보니 ‘대중 매체’에 관련된 것이었다. ‘대중 매체’. 그러고 보니 필자가 홍보 일을 처음 시작한 1980년대 초반과 비교해 보면 최근 대중매체의 모습은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거대한 미디어 공룡으로 변신한 포탈 사이트는 물론, 전문 분야 별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인터넷 언론들. 그 뿐만이 아니다. 지상파, 공중파, 케이블도 모자라 이제는 초고속 인터넷 망이 제공하는 IPTV 등 채널 수를 세어 보기도 힘들 정도로 많아진 TV의 대중 장악력은 더욱 막강해 졌다. 게다가 시청자 스스로가 만드는 동영상 UCC를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 전파하는 유투브도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이미 오래 된 일이지만 개인 블로그를 통해 자신만의 매체를 만들고 이를 인터넷 공간을 통해 대중에게 당당히 공개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파워가 약해졌다고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신문이 대중 매체의 왕으로 군림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가판’. 서울에 본사가 있는 조간 신문을 전국에 배달하기 위해서는 초판 신문을 전날 저녁 시간에 지방으로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내일 날짜가 찍힌 조간 신문이 서울 시내 가두 판매대에서 판매되는데 이를 두고 ‘가판’이라 한다.
저녁 식사를 근처에서 때우고 사무실에 대기 중인 당직 근무자는 내일 조간 신문에 혹시 잘못된 기사나 불리한 기사가 없는 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그 결과를 일일이 상사에게 보고를 한 이후에만 퇴근을 할 수 있는 실로 고단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일년 중에 하루, 평일 근무 일에 가판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날이 딱 하루 있었는데 그날이 바로 ‘신문의 날’이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신문의 날’이라 해서 쉬지 않는다.
하여튼 지난 시절 신문의 날에는 출입기자도 쉬고 홍보실 직원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다음 날 신문이 없어 저녁 때 가판 신문을 안 봐도 되기 때문이었다. 해서 홍보실의 신문 담당 직원들은 오후 시간이 되면 다른 부서 직원들의 부러움을 샀다. 왜냐하면 그들은 회사의 묵인 하에 조기 퇴근이 허용되어 단체로 영화구경을 가고, 내친 김에 저녁 회식을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경력이 짧은 홍보실 직원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고참들은 기억이 날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이야 웬만한 기업치고 홍보실이 없는 경우가 드물지만, 80년대 후반만해도 언론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홍보조직을 갖춘 기업이 드물었다. 그러한 면에서 80년대 초반, 그룹은 물론 주요 계열사 마다 홍보실을 갖춘 대우는 기업 홍보 측면에서도 과히 선구자라고 칭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오전 10시경 인사부를 가는 길에 옆에 있던 홍보실을 지나치게 된 모 임원. 눈이 휘둥그래 해지면서 소리를 냅다 지른다. “아니 이 부서는 근무태도가 영 엉망이구먼. 아래 직원들이 근무 시간에 일은 안하고 한가하게 신문만 보고 있으니. 인사부는 도대체 뭐하고 있나?” 홍보실 직원들의 주요 업무가 바로 신문 보는 것인 것을 몰랐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지금도 홍보실이 아닌 부서에서 일반 직원들이 근무 중 배짱 좋게 신문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컴퓨터로 업무를 하면서 눈치껏 뉴스도 보고, 심지어 메신저로 친구와 잡담도 나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요즘 맞벌이 하는 젊은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가정에서 신문 구독을 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회사에 오면 얼마든지 인터넷으로 더 빠르고 다양하게 볼 수 있는데 굳이 돈 들여서 구독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출퇴근 시간 지하철 역에 즐비한 무료 신문들도 지천인데 말이다.
그래도 신문이 없으면 큰 일 날 줄 아는 세대도 아직 있으니 벌써 걱정 할 필요는 없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 정권 시절, 탄압에 대한 항의 표시로 백지 광고를 게재하며 무언의 항거를 하던 모 신문이 기억난다. 그 때 고사리 손들이 돈을 모아 그야말로 딱지만한 크기의 격려 광고를 냈던 세대가 바로 지금 사회의 중추 세대인 것을 신문은 제발 기억 했으면 한다.
문기환 새턴PR컨설팅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