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같은 시각 홍콩 금융당국은 FRB의 결정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의 금리인하로 인해 지속가능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던 홍콩 경제가 자칫 과열 양상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며 환율 제도에 대한 의구심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
◇ 美경제와 상반된 양상..달러 페그제는 `毒`
홍콩의 고민은 자국의 환율 제도에서 비롯한다. 홍콩은 자국의 화폐 가치를 달러화에 연동시키는 달러 페그제를 시행하고 있다. FRB의 금리인하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홍콩달러도 약세를 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홍콩 경제가 미국 경제와 궤를 같이하는 상황에서는 달러 페그제가 문제될 것이 별로 없었다. 실제 홍콩은 경제가 하강 곡선을 그리던 2003년 FRB 저금리 정책의 수혜를 입은 전례가 있다.
문제는 미국이 경기침체를 우려하고 있는 반면 홍콩은 반대 양상을 겪고 있다는 데 있다. 홍콩 경제는 지난 4년간 연 7%의 경제성장률을 나타내고 있다. 주가는 올들어 35% 치솟으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K.C.쿽 홍콩 정부 이코노미스트도 "미국의 금리가 추가로 인하돼 화폐 가치가 하락할 경우 홍콩은 경기팽창의 결과를 겪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달러 페그제를 재고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토니 래터 전 홍콩통화청(HKMA) 부청장은 "홍콩의 경제 상황은 미국과는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며 "해외 시장이 통화정책을 결정하게 하는 제도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24년간 유지해 온 달러페그제가 여전히 재기능을 발휘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중국 경제와 유대 관계가 무르익어가는 것도 달러 페그제를 재검토할 시점이라는 주장
|
올해 홍콩의 물가는 2% 수준으로 1.5%인 물가안정목표제를 크게 상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존 창 홍콩 재정사장(경제부총리격)은 "인플레이션 망령이야말로 최대 근심거리"라고 말하는 등 물가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물가 상승의 피해를 저소득층이 고스란히 감내해야한다는 점에서 창 재정사장의 발언은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FT는 설명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자랑하는 홍콩이지만 중산층의 개인 소득은 연간 약 1만5400달러로 높지 않은 편이다.
물가 상승으로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치솟을 경우 수혜를 입는 것은 이들 자산을 다량 보유한 일부 고소득층에 국한될 뿐 일반 서민들은 생활비 급등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FT의 분석이다.
현재까지 홍콩 경제당국 내에서 달러 페그제 폐지를 공론화할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홍콩달러가 달러화와 연동하기 때문에 환율 또는 금리 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창 재정사장의 발언에서 보듯 홍콩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사실 달러 페그제 폐지를 고민하는 국가는 홍콩 뿐만이 아니다. 달러화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올들어 쿠에이트와 시리아가 달러 페그제를 폐지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이 물가 상승을 이유로 페그제 폐지 압력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