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으로 산 아파트 임대료가 주수입”

은퇴자들이 사는 법 … <2> 月 270만원으로 생활 현민남씨 부부
공원·병원 많은 신도시에 거처 마련 활력 찾으려 자주 외식·영화관람
  • 등록 2006-11-02 오전 10:10:27

    수정 2006-11-02 오전 10:10:27

[조선일보 제공] 현민남(64) 성경숙(57)씨 부부는 하루를 집에서 10분 거리인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시작한다. 매일 오전 7시 공원으로 ‘출근’해 2시간 가량 걷기와 간단한 몸풀기를 하며 아침을 연 지 벌써 6년째다. 한불종합금융 홍콩 현지법인 대표로 일하다 1999년 퇴직할 무렵 일산을 거처로 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공원 때문이었다.

급할 때 찾을 수 있는 가까운 병원이 많다는 것은 일산·분당 같은 신도시가 가진 큰 장점 중 하나. 60대에 접어드니 고혈압 콜레스테롤 관절염 같이 꾸준히 관리해줘야 하는 병이 하나 둘 늘어 한 달에 네다섯 차례씩은 병원을 찾게 된다.“나이 들면 무엇을 하건 건강을 꼭 챙겨야 해요. 집 앞에 무료 운동 시설을 갖고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데요.”

부부는 하루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지낸다. 아침 일찍 운동을 마친 후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근처 영화관으로 향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지난날 엄두도 내지 못했던‘조조 할인 관람’이 부부의 단골 데이트 코스다. 영화를 보지 않는 날은 할인점에서 장을 보거나 아기자기한 매장이 많은 일산 ‘라페스타’ 거리를 산책하며 세상살이를 구경한다. 점심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꼭 외식을 한다.

“은퇴한 부부들은 집에서만 식사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둘이서 쑥스럽게 뭘 나가서 먹나’ 하는 생각에서죠. 그렇지만 집에서 먹다 보면 반찬도 비슷비슷하게 대충 차리게 돼서 활력이 떨어져요. 경제적으로도 나가서 먹는 것이 이익이에요. 둘만 먹을 반찬을 만들다 보면 재료가 남아돌게 돼서 결국 음식 쓰레기만 늘게 되거든요.”

칼국수 해장국 등 이들 부부가 즐기는 점심 메뉴 가격은 5000원 안팎이다. 기분 좀 내보고 싶을 땐 한 사람당 1만~2만원 정도 하는 일식 뷔페를 찾는다. 점심 식사는 푸짐한 메뉴를 고르고 건강을 위해 저녁 식사는 야채나 과일 중심으로 가볍게 해결하는 것도 원칙이다.

비슷한 시기에 은퇴를 겪은 친구들과의 모임은 어느새 점심 약속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에 만나 술 한 잔 곁들인 후 “계산은 내가 하겠다”며 승강이를 벌이던 풍경도 사라졌다. 누군가 ‘쏘기’ 시작하면 모임 자체가 부담스러워지는 탓에, 갹출이 불문율이 됐다.

기본적인 생활비를 빼고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관리비와 경조사비다. 지금 살고 있는 50평짜리 오피스텔 관리비는 계절에 따라 월 30만~45만원 정도 나온다. 친구들 자녀가 결혼할 나이가 되면서 한 달이면 4,5건씩 있는 경조사비로도 약 20만원이 꼬박꼬박 지출된다.


▲ 은퇴 후 경기도 일산으로 옮긴 현민남(64)씨 부부의 가장 큰 즐거움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수공원을 함께 산책하는 것이다. 공원 벤치에 앉은 부부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일은행에서 10년 근무하다 1978년 한불종합금융으로 옮겨 99년 퇴직한 현씨는 “우리 세대에게 ‘노후 대책’은 매우 낯선 단어였다”고 했다. 만 58세까지 정년을 꽉 채워 근무한 후 퇴직금을 받아 은행에 정기예금 형식으로 넣어놓고 이자로 생활하는 것이 당시 금융계에서 일했던 이들의 막연한 은퇴 준비였다. 그러나 90년대 말 갑자기 불어 닥친 외환위기로 이들은 조기 퇴직과 은행 이자 하락이라는 두 개의 충격을 동시에 겪어야 했다.

“나이든 사람은 돈이 많으나 적으나 마음이 풍족하지 못하다는 말이 있지요. 평균 수명이 자꾸 늘어나기 때문에 돈을 마음껏 쓰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저희 부부도 은퇴 후 일정한 수입이 있는데도 생활의 규모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어요.”

32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현씨는 월세를 주기 쉬운 20평 안팎의 작은 아파트 몇 채를 구입했다. 여기서 나오는 월세 150만원과 국민연금 50만원이 이들 부부의 소득원이다. 1년에 한두 차례 가는 국내 여행과 미국에 사는 딸네 부부를 방문키 위한 항공료 등 ‘목돈’은 재직 시절 아내가 꼼꼼히 부어 둔 예금과 부동산 보증금 등에서 나오는 은행 이자 약 70만원을 안 쓰고 모아두었다가 보태서 해결한다.

현씨는 “부부가 은퇴 후의 삶을 사이 좋게 보낼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남편들이 ‘어깨의 힘’을 빼고 청소나 설거지같이 할 수 있는 집안일은 최대한 도와야 합니다. 부부 사이만 좋다면 신도시의 은퇴 생활은 목돈 들이지 않고도 심심할 틈이 없지요.”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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