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인간적인 영웅들

‘수퍼맨’가고 ‘토종 영웅’뜬다
평범한 소시민들 스크린 ‘접수’
  • 등록 2006-07-12 오후 12:30:00

    수정 2006-07-12 오후 12:30:00

▲ `플라이 대디`의 이문식
[조선일보 제공] 지난 5~6월 극장가는 ‘영웅들의 잔치’였다. 초인적 활약을 하는 비밀요원 이단 헌트(미션 임파서블 3)부터, 마음대로 태풍을 부리는 스톰(엑스맨-최후의 전쟁)과 총알을 눈알로 찌그러뜨리는 수퍼맨(수퍼맨 리턴즈)까지. 전능에 가까운 힘을 과시하며 지구를 구하는 영웅들은 개봉과 동시에 그 주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례로 석권했다. 하지만 7월 첫째 주, ‘캐리비안 해적:망자의 함’ 등장을 끝으로 극장가에는 할리우드 ‘수퍼 히어로’들이 한발짝 뒤로 물러서고, 13일 ‘한반도’ 개봉을 시작으로 평범하고 약점 많은 ‘국산 토종 영웅’들이 대거 등장할 예정이다. ‘한반도’의 재야 역사학자 민재(조재현), ‘괴물’과 맞서는 강두(송강호) 가족, ‘예의 없는 것들’만 골라 죽이는 킬러(신하균), 가족을 위해 특수훈련이나 조폭생활을 견디는 소심 가장 가필(‘플라이 대디’의 이문식)과 인구(‘우아한 세계’의 송강호)는 바로 한국형 ‘소영웅’들이다.

◆초능력은 없고 약점만 많은 영웅들

우리의 토종 영웅들은 초능력도 없고 싸움을 잘 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소심하고 게을러 영웅의 미덕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 단 목표를 향해 무지막지하게 밀어 붙인다. ‘괴물’(27일 개봉)의 강두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아버지 집에 얹혀 사는 못난 남자지만 사랑하는 딸을 구하기 위해 목숨 바쳐 한강으로 뛰어든다. ‘한반도’의 민재는 지독한 고집 때문에 계속 해고되지만, 국새를 찾는 작업에 모든 것을 바친다. 짧은 혀 컴플렉스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킬러(‘예의 없는 것들’)는 세상에 해가 되는 사람만 죽인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한국서 ‘수퍼맨’ 만들면 코미디?

한국의 영웅들은 왜 ‘지나칠 정도로 인간적’일까. 여기에는 인간을 넘어서는 데 필요한 ‘기술’과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경제적 이유도 있다. 황우현 튜브픽쳐스 대표는 “국내 영화인들의 개별 능력은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 능력을 실현시킬 시스템과 경험이 부족하다. 결국 문제는 돈”이라고 했다. 국내 영화제작비 상한선이 20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주얼 효과에 쓸 수 있는 돈은 기껏해야 50억 내외. ‘미션 임파서블3’의 제작비는 1억 5000만달러(약 1400억원), ‘수퍼맨 리턴즈’는 2억6000만달러(약 2500억원)로 제작비 100억원 안팎의 국산 대작 ‘괴물’과 ‘한반도’의 15~20배에 가까운 자본력이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는 “한국에서 ‘수퍼맨’같은 영웅을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코미디가 될 공산이 크다”고 했다.

◆한국적 영웅은 희망주는 ‘의적’

‘영웅’의 전통이 다르다는 점도 한 몫 한다. 미국 만화출판계의 양대산맥 ‘디씨코믹스’와 ‘마블코믹스’는 만화를 통해 수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수십년간 꾸준히 초인적 영웅 캐릭터를 성장시켜왔다. 반면 한국의 전통적 영웅은 ‘홍길동’ ‘장길산’ ‘임꺽정’같은 의적 스타일로 대변된다. 이런 영웅은 ‘볼거리’보다 ‘일대기’가 중요해 영화라는 매체보다는 ‘주몽’, ‘연개소문’ 같은 TV 대하사극 형태로 구현되기 쉽다.

과거 한국 사회에 영웅다운 영웅이 없었던 경험도 현대의 영웅을 완전한 인물로 만들지 못하는 이유다. 역대 지도자들에 대한 반감과 불신으로 ‘영웅에 대한 불온한 시선’을 가지게 된 한국 관객들에게 너무 완벽한 영웅은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수퍼히어로는 대리만족과 함께 열등감을 안기지만, 후천적 영웅은 현실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준다. 충무로에서 굳이 수퍼히어로를 모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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