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의 그늘.."세습 해직 아픔이 두렵다"

공장이전, 고용형태 전환 수단 정리해고 활용
정리해고 사업장 15곳 중 8곳 재무 이상 무
  • 등록 2012-08-10 오전 11:09:45

    수정 2012-08-10 오전 11:09:45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지난 2005년 흥국(010240)생명에서 노조 간부로 활동하다 해직된 김득의씨는 요즘도 악몽을 꾼다. 아들이 흥국생명에 입사했다가 자신처럼 정리해고되는 꿈이다. 더 끔찍한 것은 자신을 해고한 사주의 아들이 이번에는 아들을 해고하는 꿈.

김 씨는 “자본 세습이 대대손손 이뤄지는 상황에서 노동자는 정리해고를 물려주는 게 아닌지 두렵다”며 “꿈이었지만, 억장이 무너져 울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정리해고 당사자 증언대회’에서는 김씨와 같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콜텍에서 통기타를 만들다 지난 2007년 회사가 폐업하며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이인근씨는 “사측이 중국공장으로 확장 이전하며 정리해고를 단행해 문제를 제기하자 대전공장의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며 “회사에서는 수년간 흑자를 내다가 지난해 6억원 적자가 났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중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은 증설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윤미례 금속노조 시그네틱스 분회장은 “사측이 안산공장의 운영난을 이유로 지난해 28명의 여성노동자를 해고했지만 이는 거짓말”이라며 “생산라인 전체를 도급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의도적 해고”라고 했다.

정리해고를 유형별로 분석한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공장 이전과 고용형태 전환 등의 합법화 수단으로 정리해고가 활용되고 있다”며 “정리해고 문제가 있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 15곳 중 파카한일유압과 시그네틱스, 콜트악기, 한진중공업(조선), 흥국생명, K2 등 8개 업체는 재무제표상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특히 흥국생명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5번의 정리해고를 통해 3400명의 직원을 500명으로 줄였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의 적자는 한 번도 없었다.
이 연구원은 “흥국생명의 경우 정리해고 사유를 ‘미래 경영상의 이유’로 댔다”며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미래로까지 확장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꼽았다.

이어 “경영진과 주주의 책임과 부담 없이 기업 경영 위기의 대부분을 노동이 떠안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대한 사회적 기준과 평가 절차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도 “긴박한 경영상 필요의 판단과 평가를 사용자에게 맡겨놓는 이상 어떤 방법이든 사후약방문에 불과할 것”이라며 “경영상 이유와 인원감축의 필요성에 대한 확인과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절차와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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