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등 돌리고 앉은 등대와 나만의 바다(VOD)

전남 홍도 등대
  • 등록 2007-07-12 오전 9:47:00

    수정 2007-07-12 오전 9:47:00

▲ 기차 타고 배에 올랐다가 산 넘어…. 홍도 등대 가는 길은 멀지만 끝없이 변하는 풍경에 지루하진 않다. 홍도 등대에는 어렵게 찾아온 반가운 손님을 위해 바다까지 닿는 예쁜 산책로가 설치돼 있다.

 
[조선일보 제공] 성당 지나자마자 흰 벽에 검은 글씨로 쓰인 '등대로 가는 길 700m' 표지를 따라 왼쪽으로 한 번 꺾으면 본격적인 '등대 길'이 시작된다. 등대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수월하도록 2005년 6월 나무 계단과 난간을 만들었다.

길은 매끈하게 정리됐지만 양 옆으로는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이 엉켜 있다. 계단을 반쯤 올랐을까. 흰색 등대가 언덕 위 안개 속에 반짝 모습을 드러낸다. 땅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모양새다. 느릿느릿 나무 계단을 올라 약 20분 만에 등대에 닿는다. 1931년 문을 연 홍도 등대는 20초에 세 번 반짝이는데 불빛이 무려 45㎞까지 뻗어나간다. 흰 등탑은 물론 등대 안 검은 사다리까지 76년 전 것 그대로다.

등대 아래가 사각으로 된 모양새가 특징이다. 적송(赤松)이 좌우로 뻗은 등대 앞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다와 암초에까지 닿는다. 가끔 낚시꾼들이 오는 것을 빼면 찾는 이가 거의 없다. 가로등 하나 없는 등대 주변 산책로를 밤에 둘러보려면 손전등은 필수다. 손전등을 끄는 순간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는 깜깜한 어둠이 덮친다. 하늘이 깨끗한 날이면 별 구경을 원 없이 할 수 있다.

홍도 등대에는 김원근 소장을 비롯해 이상익 황진성 등 세 명의 등대 관리원이 일하고 있다. 한 달에 22일 근무하고 9~10일을 몰아 쉬는 방식으로 근무하는데 깔끔하게 단장한 등대 앞마당에서 이들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진다. 2005년 등대원 숙소를 개축하면서 일반인에게 등대 체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숙소를 하나 더 지었다. 누구나 전화로 미리 예약만 하면 등대에서(정확히 말하면 등대 바로 옆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등대로 가는 길은 '먼 길'과 '가까운 길' 두 개가 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KTX를 타고 간 후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두 시간 반 정도 달리면 홍도 북항(北巷)에 닿는다. 배에서 내리는 관광객을 처음 맞는 이들은 민박이나 식당서 나온 '호객꾼'이다. "숙소 잡았냐"고 묻다 "등대 왔는데…"라 하면 '1구 손님'은 아니라고 판단해버리고 '쌩' 하니 가버린다.

'먼 길'을 따라 등대로 가려면 홍도에서 가장 높은 '깃대봉'을 두 시간 가량 걸려 넘어야 한다. 산 타기를 즐기고 어지간한 경험이 있다면 모를까 쉽지 않은 등반이다. "외길이어서 길 잃을 염려는 없다"는 섬 사람들도 "길은 좋은가" 물으면 하나같이 "별로…"라고 답한다. 바다가 넘어 보이는 산길의 경관이야 추레할 리 없지만 사람이 오다가다 자연적으로 생긴 좁은 '외길'에는 풀과 나무가 무성해 제대로 된 옷을 갖추지 않으면 풀 독 오르기 십상이다. 비라도 오면 그 길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경사도 가파르다.

북항에서 어선이나 유람선을 타고 2구로 들어가는 뱃길이 '가까운 길'이다. 공식적인 배편이 없다는 게 문제긴 한데 홍도를 한 바퀴 도는 유람선에 부탁하면 2구 선착장에 내려준다. 인원이 많을 경우 한 사람당 1만5000원 하는 유람선을 타느니 5만원 정도를 주고 고깃배 한 척을 빌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2구에서 묵기로 했다면 민박집 주인이 북항까지 고기잡이 배를 몰고 마중을 나오기도 한다. 10분 정도 걸리는 짧은 바닷길이긴 한데, 배편을 고르고 부르고 하는 게 역시 간단치는 않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1·2구 다 서던 쾌속선이 노선을 바꾸면서 2구로 가는 길은 이처럼 팍팍해졌다. 바다 건너 배 갈아타고 산 올라 찾은 등대를 만나는 순간이 그래서 더 고맙고 반갑다.


▲ 등대 앞 적송 숲과 외지인에게 홍도 2구 안내하기를 즐기는 넉살 좋은 진돗개 ""홍이""



::::: 찾아가는 길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4번(시기에 따라 바뀜) 홍도 가는 배가 떠난다.(편도 3만2000원, 시간표 및 예약 1544-1114 www.seomticket.co.kr) 홍도 1구에 있는 북항에 내린 다음 유람선 직원에게 2구에 내려달라고 부탁하거나 홍도 2구 이장이나 대흥여관에 물어 배를 빌린 다음 2구로 넘어간다. 약 5만원에 빌릴 수 있다. 최소 하루 전에는 시간 약속을 해야 한다.

::::: 숙소 정보

등대 숙소에는 방, 거실, 부엌, 화장실이 있다. 취사기구가 갖춰져 있고 텔레비전과 에어컨까지 설치했다. 이용료는 무료. 단 경쟁률이 높아 한두 달 전 예약은 필수다. 문의 홍도 항로표지관리소 (061)246-3888. '대흥여관'에서 묵으면 북항까지 배로 마중을 나와준다. 1인당 2만원(간단한 식사포함) (061)246-3868. 민박 문의는 김은길 이장 (061)246-2525.

::::: 먹을거리

2구에는 식당이 없다. 대신 거의 모든 집에서 고기잡이를 하기 때문에 홍도 주변서 많이 나는 생선 회를 먹게 해준다. '정가'는 없다. 대흥여관의 경우 자연산 광어회는 3만원(깎지도 않았는데, "원래는 4만원인데 깎아줬다"고 했다), '백반' 2인분 1만원(1인분 5000원)을 받았다.

::::: 그 밖에 홍도 2구에서는

이장 김은길(64)씨는 2구 산책 코스는 선착장에서 시작해 등대를 지나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산책 코스를 추천했다. 선착장에서 마을 쪽인 오른쪽 길을 따라 가다 성당을 지나 교회까지 간다. 교회 앞마당을 가로질러 폐교가 된 흰색 학교 건물 두 채를 지나 길 따라 가면 등대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과 만난다.

등대를 둘러보고 숙소 앞 계단으로 내려가 바다를 즐긴 다음 내려갔던 계단을 따라 다시 조금만 올라오면 파란색 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 지나자 마자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가자. 억새와 야생화로 가득한 바다 옆 오솔길이다. 길 따라 가면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교회 가기 전 흰 창고가 있는데 창고 왼쪽에 난 길로 접어들면 원시림에 가까운, 비밀스런 숲이 나온다. 바위 동굴 위로 난 '자연 구름다리'를 걸어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지만 아직 길이 정돈되지 않아 초보자는 위험할 수 있다. 김 이장은 "난간과 등산로를 조만간 설치하는 등 탐방로를 정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테마투어는 홍도·흑산도를 다녀오는 2박3일 여행 상품을 26만5000원(KTX 기준·우등 고속버스 이용시 25만 5000원)에 판매 중이다. 9월 15일까지 매일 출발하며 희망할 경우 등대가 있는 2구에서 숙박할 수 있다. (02) 733-0882 www.wrtour.com 

▲ 45Km까지 빛을 뿜어내는 등명기 옆에서 굽어본 바다




▲ 배 갈아타고 홍도등대 가는 길 / 조선일보 김신영 기자 / Tagstory에 올라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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