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콧대 누른 `노장의 투혼`

  • 등록 2005-09-09 오전 11:56:14

    수정 2005-09-09 오후 2:45:35

[이데일리 이태호기자] `노장은 죽지 않는다고 했지만 결국은 사라지게 돼 있다. 그러나 결코 쉽게 사라질 수는 없다.`

라켓을 거머쥔 노장의 손아귀엔 땀이 그득했다. 세트 스코어는 2대2, 게임 스코어는 5대 6으로 밀리고 있다. 이제 한 게임만 더 놓치면 무릎을 꿇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노장은 이를 악물었고 결국 3게임을 연속으로 따내며 승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기적을 연출해냈다.

어제 뉴욕 국립테니스센터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그랜드슬램 대회인 US오픈 8강전에서 안드레 애거시가 보여준 모습이다. 올해 35세로 이번 대회 남자부 최고령자인 애거시는 이날 자신 보다 10살이나 어린 제임스 블레이크를 맞아 1,2세트를 먼저 내주고, 3세트를 내리 따내며 역전승을 거두는 `노장의 투혼`으로 미국민들을 감동시켰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승리에 대해 ‘아디다스`의 애거시가 `나이키`를 꺾었다며, 애거시가 펼친 명승부로 인해 아디다스가 적잖은 광고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최근 리복을 인수하면서 나이키에 도전장을 낸 아디다스가 스폰서 전략에서 회심의 카운터 블로를 날렸다는 평이다.

한 때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며 세계 테니스계를 주름 잡았던 애거시는 1986년 프로 데뷔 당시부터 나이키와 스폰서 계약을 맺은 뒤 20년 가까이 가슴에 나이키의 마크를 달고 뛰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애거시의 기량이 예전 같지 않자 광고효과가 적다고 판단한 나이키는 최근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애거시와의 인연을 정리했다.

실제 애거시는 2003년 이후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해 전성기가 훌쩍 지났음을 성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디다스는 지난 7월 애거시와 과감하게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단순한 성적만으로 따져볼 수 없는 `노장의 가치`를 높이 산 것이다. 이날의 눈부신 승리에 아디다스가 기쁨을 만끽한 것은 물론이다. 특히 이날 패배를 안은 블레이크의 가슴에 찍힌 것이 바로 나이키 로고였기 때문에 기쁨은 더했다.

스포츠 마케팅 계약 대행사인 플래티넘 라이 엔터테인먼트의 라이언 쉰먼 사장은 최근 고전을 거듭해온 애거시의 승리가 아디다스에 커다란 감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쉰먼 사장은 "모든 이들이 애거시에 집중하고 있다"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승리"라고 밝혔다. 아디다스의 에리히 슈타밍거 이사도 "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그가 남은 경기에서도 승리할 수 있기를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기쁨을 표했다.

애거시는 이제 4강에 올랐을 뿐이지만, 설사 우승을 하지 못한다 해도 `빛나는 투혼`으로 이미 승리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디다스도 그의 승리를 함께 누리고 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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