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작전’이 그리는 주식시장은 치열합니다. 작전 세력 간 배신은 물론이고 폭행과 납치,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흡사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화투판이 연상되지 않나요? 맞습니다. 영화는 주식시장을 피도 눈물도 없는 도박판에 비유합니다.
작전세력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개인투자자들을 마치 ‘호구’처럼 증시로 끌어들입니다.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개미들이죠. 영화에서만 그럴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작전 세력들은 알게 모르게 활개를 치면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며 교훈을 얻어 봅시다!
|
2009년 개봉한 ‘작전’은 3년 앞서 개봉한 ‘타짜’와 유사한 인물 구도와 흐름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별 볼 것 없는 인생에서 한탕을 노리기 위해 주식판에 뛰어든 강현수(故 박용하)는 큰 실패를 겪고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절치부심한 그는 주식 차트만 보고도 작전주의 패턴을 예측하는 뛰어난 개인투자자가 됩니다. 이후 조폭 출신 황종구 DGS캐피털&홀딩스 대표(박희순), 증권사 브로커 조민형(김무열) 등을 우연히 만나 수백억원짜리 작전을 계획합니다. 주가 조작을 위해 돈을 대주는 전주 역할로 정치인 등의 자금을 관리하는 프라이빗뱅커(PB)인 유서연(김민정)도 합류하죠. ‘타짜’의 고니가 평경장과 정마담, 고광렬을 만나 한판을 벌리는 것처럼.
작전을 치르기 위한 드림팀이 모여 성공을 거뒀다면 영화는 싱겁게 막을 내리겠죠. 작전주인 대산토건의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황종구·조민형과 유서연, 대산토건 대주주인 박창주(조덕현)가 머리 굴리기가 시작합니다. 유서연과 박창주는 주식을 굴리는 강현수에게 “(작전이 성공한 후) 주식을 매도하기 전 나에게 알려달라”고 넌지시 청탁을 합니다. 황·조는 그들대로 강현수에게 덤터기를 씌운 후 유서연이 맡긴 돈을 빼돌릴 궁리를 합니다.
대산토건의 주가를 띄우려는 대주제에 세력들간 물밑 작업이라는 스토리가 겹치면서 영화는 급격하게 전개됩니다. 먼저 주가 조작을 기다렸다가 돈을 벌면 되는 박창주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홀로 주식을 매도, 모두의 뒤통수를 칩니다. 각자의 계획이 있던 강·유와 황·조는 서로 척을 지게 되고 속절없이 떨어지는 대산토건 주식을 누가 먼저 잘 처분하는지 경쟁하게 됩니다.
하지만 등장 인물간 수싸움이 치열해질수록 영화가 유지하던 내러티브(Narrative·서술)는 힘을 잃습니다. 본래 개미들을 등쳐먹을 생각이었던 강·유는 본분을 잊고 갑자기 정의를 구하는 선역으로 변모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표가 국회의원 출마라는 다소 황당한 설정을 꺼내든 황종구는 폭주하고, 주가 조작에서 발만 얹으면 됐던 브로커 조민형은 살인 현장에 함께하는 처지가 됩니다. 이 와중에 황종구의 부하, 유서연의 비서는 뚜렷한 명분도 없이 자신의 상관을 배신하기도 합니다.
결국 강·유는 금융감독원과 경찰의 힘을 빌어 황·조를 처분하는 ‘권선징악’으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나쁜 짓은 다해놓고 “아무리 발악을 해도 안되는 놈은 안되는 게 세상”이라며 자기만족을 시전하는 황종구의 넋두리와 함께요.
|
한국 증시와 주가 조작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소재는 이목을 끌었습니다. 주식 투자를 해봤던 사람이라면 흥미를 끌 대목들도 나오죠. ‘계란을 한 바구니 담지 마라(한 종목에 치우치지 마라)’는 주식시장의 격언이나 주당순자산가치(BPS) 같은 증시 용어도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기관투자가들이 전날 누가 얼마만큼의 주식을 샀는지 알 수 있게 내역을 적은 ‘장판지’의 존재를 알리기도 하죠.
영화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점은 닷컴버블이 본격화되던 2003년입니다. 이때 닷컴회사에 투자했다가 큰돈을 잃은 강현수가 5년간 혹독한(?) 자기 수련을 거쳐 개인투자자로 거듭납니다.
작전주 대상인 대산토건은 현재 증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수십년전 회사를 설립한 선친의 역량으로 회사는 성장했지만 2세 경영인을 맞아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실적이 고꾸라져 결국 주가 조작의 수단이 되거나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오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도 세력들은 한국증권TV에 출연하는 증권 전문가 김실장과 모의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4000원대였던 주가는 벤처기업 인수합병 소식에 4만원 이상으로 치솟습니다. 사설 정보지에 신기술 개발 소식을 담기도 하죠.
이처럼 증권가에서는 ‘수급(쩐주), 증권사 직원, 기자 세 명만 있으면 작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실제 그렇진 않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여론을 호도하고 개미들을 유혹하기 쉽다는 의미의 말이겠죠.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은 주가가 널뛰기를 하는 주식이 작전과 연관 있음을 어렴풋이 인지하고도 매수에 나서는 행태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작전 세력과 함께 수익을 공유하겠다고 내심 기대하는 것일 테죠. 하지만 영화에서 보듯 작전 세력은 개미 투자자들과 수익을 공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가가 올랐다 싶으면 쭉 하락하고 바닥이라고 생각해도 지하까지 떨어트려 개미들을 털어냅니다. 그들과 한패가 아닌 이상에야 함께 대박을 일굴 수 있을까요?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서는 어렵지 않을까요.
|
주가 조작으로 차익을 거두지 않고 7000만원을 한결벤처에 투자한 강현수는 1년 후에 배당으로만 2억을 받습니다. 새 외제차를 몰고 가던 그는 “괜찮은 기업이 있는데 3년은 묻어두자”고 말합니다. 차트만 보고 차익 거두기에 바빴던 개미가 기업 성장에 베팅하는 가치 투자자가 된 겁니다.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돈 100달러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는 워렌 버핏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주식 농부’로 유명한 국내 슈퍼 개미는 커피 마실 돈으로 주식을 투자해 노후에 대비하라고 조언합니다. 마무리가 다소 교훈적인 느낌이 없진 않지만 결국 진정한 가치를 보고 기다리는 것이 정도(正道)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