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굽 높이에 비례해 척추와 발 건강은 나빠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얼마나 나쁠까. 기자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11㎝짜리 킬 힐을 신고 척추 관절 전문인 서울 양천구 H병원에서 체험 실험을 해보았다. 실험은 ①압력 ②엑스레이 ③적외선 체열 측정의 3단계로 진행됐는데, 발이 얼마나 혹사당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는 이름 그대로 '살인적'이었다.
◆운동화 신으니 곧 정상으로
"여길 보세요. 발가락 앞쪽에 압력이 이렇게 쏠리고 있는 게 한눈에 확인되죠?" 실험을 위해 측정 시스템을 제공해준 H병원 김응수 과장(정형외과)이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두개의 발 그림을 가리키며 기자를 쳐다봤다.
두 발의 첫째·둘째 발가락 끝 부분엔 선명한 빨간색 점이 촘촘하게 찍혀 있었다. 두번째와 세번째 발가락 사이엔 핑크색 점도 보였다. 핑크색은 300킬로파스칼(kPa) 이상, 빨간색은 200킬로파스칼 이상 되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압력밥솥에서 밥이 끓을 때 압력이 약 70킬로파스칼이니 그 4배 이상의 압력이다. 이날 병원에서 11㎝ 하이힐을 신고 불과 15분 걸어 다닌 기자의 발은 밥이 끓을 때의 4배나 되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발이 느끼는 압력은 구두 안창에 깐 얇은 패드 속 99개 인공 센서를 통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다. 화면 속 그림엔 80킬로파스칼 이상 압력을 나타내는 파란색·연두색 점들도 발뒤꿈치와 발가락 앞부분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다.
하이힐을 벗고 바로 운동화를 신은 채 압력을 측정하자 1분쯤 뒤 컴퓨터 화면에서 발 앞뒤에 잔뜩 몰려 있던 빨간 점이 전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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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대 늘어나고 발가락 관절 위험
이번엔 11㎝ 하이힐을 신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운동화를 신었을 땐 발목과 발등 모양이 L자형으로 90도에 가깝게 안정돼 있었지만 하이힐을 신은 상태에선 발목 관절이 앞으로 심하게 튀어나와 발목과 발등이 거의 I자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발가락 앞부분도 운동화를 신었을 때와 달리 뼈 관절이 약간 어긋나 있는 게 보였다.
서울아산병원 유종윤(재활의학과) 교수는 "발목 관절이 꺾이면서 그 주변부 인대가 늘어나고, 전족부(발 앞부분) 발가락 관절이 탈구되면서 주변의 지방조직을 자극해 관절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A회사 여직원 3명의 지원을 받아 적외선 체열(體熱) 측정 실험을 해보았다. 20대인 이들 여성 3명이 각각 8, 9, 10㎝ 하이힐을 신고 5~6일 하루 3회(오전 9시30분, 오후 1시30분, 오후 5시30분)씩 하체 부위 체열을 측정했다.
반면 운동화를 신고 8시간 내내 서서 일했던 H병원 간호사 전현주(여·26)씨가 찍은 하지 체온 적외선 사진에 나온 색깔은 오전·오후 모두 빨강·주황·노랑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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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엔 좋지만…
의사들은 하이힐을 오래 신었을 때 ▲엄지발가락(무지)이 바깥으로 휘는 '무지외반증' ▲발바닥 근육막에 염증이 생기는 '족저근막염' ▲발목이 삐어서 생기는 염증(족근부 염좌) 등에 걸릴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몸무게가 무릎 중앙으로 고루 분산되지 않고 관절염에 약한 무릎 안쪽과 앞으로 쏠려 관절염이 생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아산병원 유종윤 교수는 "높은 굽을 신으면 몸의 중심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체중이 신발 앞쪽으로 이동하고, 허리는 뒤로 젖혀지는데 이런 자세가 반복되면 척추가 뒤로 휘는 척추후만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기엔 멋지지만 건강을 생각해선 가능한 한 높은 굽을 덜 신는 것이 좋다는 얘기였다.
▲ 11일 서울 목동 힘찬병원에서 하이힐이 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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