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사다리 걷어차기'식 개편 안돼[생생확대경]

도수·체외충격파 등 비급여 본인부담률 90%↑ 검토
횟수 아닌 일괄 부담률 인상이 필요 치료 제한 가능성
의사와 정보 비대칭성에 가입자 비용 부담 커질 우려
실손 보험금 한번도 안탄 62%…돈만내고 혜택 줄수도
  • 등록 2025-01-09 오전 7:32:19

    수정 2025-01-09 오전 8:24:46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실손보험은 꼭 있어야 해”

12년 전 지인의 권유로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당시 지인은 직장 상사가 실손보험 덕분에 치료비 부담을 크게 덜었다고 했다. 그렇게 30대 중반에 든 실손보험을 이후 보험사 이름을 까먹을 정도로 10년간 완전히 잊고 살았다. 그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사건은 2023년 10월 어느 날 일어났다. 신발을 신으려고 오른손 검지를 구둣주걱 삼았다가 손가락을 다치고 말았다. 뼈에 이상이 없어 별문제가 없을 줄 알고 3개월쯤 내버려뒀더니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았다. 병원에선 제때 치료를 받지 않아 다친 인대가 그대로 굳어버려 영구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의사는 체외충격파 치료를 권했는데 1회 가격이 10만원이 넘었다. 그때 10년 전 가입한 실손보험 덕분에 본인부담 1만원(1회당)만 냈고 손가락 기능도 완전히 회복했다. 만약 실손보험이 없었다면 100만원 이상이 필요했다. 이후 주변에 비슷한 사례지만 실손보험이 없어 치료하지 않고 불편하게 사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9일 토론회를 열어 비급여·실손보험 개편 초안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초안엔 건강보험 급여와 비급여 사이에 두고 있는 선별급여 안에 ‘관리급여’를 신설, 도수치료·체외충격파 등 실손 청구가 많은 상위 10개 비 중증 비급여 항목을 넣어 관리하는 방안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급여 항목은 본인부담률을 90% 이상으로 높여 오남용을 막고, 급여·비급여 진료를 동시에 하는 ‘병행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를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할 전망이다. 여기에 본인부담률이 낮은 1·2세대 실손보험은 재매입(금액 지금 후 계약 해지)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문제는 일부 가입자의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해 일괄적으로 관리급여 항목 본인부담률을 90% 이상으로 높이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 부상이 ‘비 중증’에 해당할 수 있어도 손가락을 계속 사용하는 직업을 가졌거나 ‘삶의 질’ 측면에선 체외충격파 등 비급여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한 횟수 제한이 아닌 본인부담률을 일괄적으로 높이는 방식을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다. 또 실손 청구가 잦은 치료는 보험가입자가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단 방증이기도 하다.

의사와 환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도 고려해야 한다.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비급여 치료를 환자에게 시행하면서 일일이 정확한 비용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시행하는 비급여 항목에 본인부담률을 90% 이상으로 높이면 실손보험에 가입하고도 높은 비용 부담 탓에 필요한 치료를 포기할 가능성도 크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중 한 번이라도 보험금을 받은 가입자(2020년 기준)는 37.6%라고 한다. 전체 가입자 3명 중 2명은 실손 보험에 가입하고 단 한 번도 보험금을 받지 않은 것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MZ세대 등 젊은 층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실손 보험이 필요한 나이가 되기도 전에 정부가 일부 과잉 진료를 근거로 ‘사다리를 걷어차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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