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지인의 권유로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당시 지인은 직장 상사가 실손보험 덕분에 치료비 부담을 크게 덜었다고 했다. 그렇게 30대 중반에 든 실손보험을 이후 보험사 이름을 까먹을 정도로 10년간 완전히 잊고 살았다. 그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사건은 2023년 10월 어느 날 일어났다. 신발을 신으려고 오른손 검지를 구둣주걱 삼았다가 손가락을 다치고 말았다. 뼈에 이상이 없어 별문제가 없을 줄 알고 3개월쯤 내버려뒀더니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았다. 병원에선 제때 치료를 받지 않아 다친 인대가 그대로 굳어버려 영구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의사는 체외충격파 치료를 권했는데 1회 가격이 10만원이 넘었다. 그때 10년 전 가입한 실손보험 덕분에 본인부담 1만원(1회당)만 냈고 손가락 기능도 완전히 회복했다. 만약 실손보험이 없었다면 100만원 이상이 필요했다. 이후 주변에 비슷한 사례지만 실손보험이 없어 치료하지 않고 불편하게 사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제는 일부 가입자의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해 일괄적으로 관리급여 항목 본인부담률을 90% 이상으로 높이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 부상이 ‘비 중증’에 해당할 수 있어도 손가락을 계속 사용하는 직업을 가졌거나 ‘삶의 질’ 측면에선 체외충격파 등 비급여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한 횟수 제한이 아닌 본인부담률을 일괄적으로 높이는 방식을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다. 또 실손 청구가 잦은 치료는 보험가입자가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단 방증이기도 하다.
의사와 환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도 고려해야 한다.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비급여 치료를 환자에게 시행하면서 일일이 정확한 비용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시행하는 비급여 항목에 본인부담률을 90% 이상으로 높이면 실손보험에 가입하고도 높은 비용 부담 탓에 필요한 치료를 포기할 가능성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