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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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지난 9일 오전 9시(미국 현지시간 8일 오후 7시) 세계의 이목이 미국 백악관으로 쏠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이 북한과 관련해 오후 7시에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고 알렸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발표는 파격 그 자체였다. 바로 ‘5월 북미정상회담 합의’ 소식이었다.
정 실장이 세계 외교가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고 있다. 정 실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을 연쇄 면담하면서 4월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5월 북미정상회담 성사의 숨은 주역으로 떠올랐다.
평창올림픽 이후 소문만 무성했던 대북특사단 파견은 지난 1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 이후 공식화됐다. 임종석 비서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특사단장 물망에 올랐지만 문 대통령의 최종 선택은 정 실장이었다. 대미관계를 의식한 조치였다. 정 실장은 5일 대북 수석특사로 평양을 방문, 김정은 위원장과의 접견에서 4월말 남북정상회담 조기 개최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나흘 뒤인 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면담 성과는 더 극적이다. 북미대화 재개나 진전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합의가 이뤄졌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외교적 성과다.
돌이켜보면 정 실장은 문 대통령의 ‘신의 한수’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인선에 애를 먹었다. △탄핵사태에 따른 정상외교의 공백 △느슨해진 한미동맹 △중국과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 등 막중한 외교안보 현안을 다룰 인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21일 춘추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정의용 아시아정당 국제회의 상임위원장을 임명한다”고 직접 발표했다. 정의용 카드에 예상밖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반도 위기상황을 고려할 때 초대 국가안보실장을 맡기에는 우려스럽다는 것이었다. 실제 정 실장은 안보분야는 물론 미중일러 4강 외교 경험이 거의 없었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의 정 실장은 70세가 넘는 고령으로 다자외교와 통상 분야에 정통한 직업 외교관 출신이었다. 문 대통령의 설명은 달랐다. 문 대통령은 “과거 정부에서는 안보를 국방의 틀에서만 협소하게 바라본 측면이 있었다”며 “안보와 외교는 동전의 양면이다. 북핵 위기 상황에서 외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정의용 실장이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취임 이후 청와대 안팎의 우려를 ‘실력’으로 극복해나가며 문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했다. 지난해 6월말 첫 한미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사드배치에 대한 미중의 외교적 압박 속에서 최대 뇌관이던 사드배치 논란을 문 대통령의 방미 이전에 말끔하게 정리했다. 대중외교는 물론 현 정부 지지층을 고려할 때 ‘미국 경도’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대미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한 것이다. 정 실장은 이후 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속에서 해외순방 수행은 물론 주요국 정상과의 통화에도 모두 배석하면서 외교적 조언자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한편 정 실장은 11일 오후 귀국, 문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 면담 등 방미외교 성과를 보고한 뒤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해 방북·방미외교 성과를 전달하고 한반도 정책에 대한 지지를 협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