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콘텐츠를 살리자)②악순환 고리 끊어야 한다

플랫폼사업자 저가경쟁 결국 PP 수익약화로.."수신료 하한제 필요"
지상파 비해 규제많아..`지상파 콘텐츠 앵무새방송` 전락
  • 등록 2010-09-03 오전 10:05:00

    수정 2010-09-03 오전 10:05:00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서울에 사는 조 모(33) 씨는 최근 전화 한 통화를 받고 지역 케이블 방송이 제공하는 방송과 인터넷 결합상품에 가입했다. 디지털 케이블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데다, 가격도 통신사 인터넷서비스 하나만 이용할 수준으로 저렴했다. 무엇보다 조 씨의 마음을 끈 것은 3개월 무료 방송시청이 가능하고, 설치비조차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서비스는 3년 약정 상품이었지만 조 씨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최근 몇몇 통신사들이 결합상품에 가입하면 현금을 지원하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조 씨는 향후 약정 위약금이 문제가 된다면, 그때는 현금 마케팅을 하는 통신사를 찾으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같은 방송통신 시장의 출혈 경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통신업계와 방송업계는 결합상품을 내세워 가입자 확보 전쟁을 치르며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있다.

게다가 최근 통신업계에서는 인터넷전화 등 통신서비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IPTV 등 방송을 무료로 끼워주는 등 강도 높은 무료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이같은 플랫폼사업자들의 출혈경쟁은 단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이득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같은 상황이 고착화될 경우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출혈 경쟁의 고리 속에서 이를 버티지 못하는 것은 결국 방송시장 약자인 프로그램 제작사(PP)들이다. PP의 쇠락은 곧 콘텐츠의 쇠락을 뜻한다. 소비자들이 볼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수신료 정상화 위해 가격하한제 필요"

방송시장에서 방송업계와 통신업계가 펼치는 저가 경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PP에게 전가되고 있다. 수신료는 오르지 않고 PP에 돌아가는 배분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수신료 정상화와 SO와 PP 간 수신료 배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아날로그 케이블 채널 수신료는 평균 1만5000원으로 이는 15년 전과 비교, 물가상승률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가격상한제만을 두고 가격을 규제하다 보니, 통신사업자와 겨뤄야 하는 방송사업자들이 수신료를 인상하지 못한 것이다.

서울대 윤석민 교수는 가격 상한제한 방식의 현 요금규제가 국내시장 상황과는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격상한을 제한하는 방식은 `소수 사업자가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며 과도한 요금을 부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저가경쟁을 펼치는 시장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우리나라에서 가격 상한제는 실효성이 없다고 봐야한다"며 "현행 가격상한제 취지를 유지하며 가격하한제를 동시 운영해 독점가격 폐해도 대비하고 출혈경쟁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SO와 PP의 수신료 분배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SO 방송매출의 25%를 PP에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방통위가 25% 수신료 배분 여부를 SO 재허가 요건에 포함, 개선이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결합상품을 통해 할인 폭을 키워 PP의 몫을 줄이는 편법이 발생할 수 있어, 이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악순환, 규제완화로 끊어야

방송시장에서 가장 약자인 PP는 규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먼저 PP들은 지나치게 협소하게 획정된 시장으로 인해 경쟁력 있는 사업자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방송은 매출이 전체방송시장(지상파와 SO·위성 등 유료방송 모두 포함) 매출의 33%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달리 PP는 지상파와 플랫폼사업자를 제외한 PP업계 매출의 33%를 넘지 못하게 돼 있다. 지상파와 PP의 매출을 제한하는데 시장의 기준이 다른 것이다.

윤 교수는 이에 대해 "시장이 지나치게 협소하다 보니 PP는 4200억원대 매출을 넘지 못하도록(홈쇼핑 제외) 돼 있어, 경쟁력 있는 사업자로 성장할 수 없다"며 "PP 역시 지상파와 같은 시장 범위를 적용하거나 PP업계 매출 총액의 50% 초과금지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특정 PP에 임대하는 채널 수가 전체 운영채널의 20%를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과 MSP(SO와 PP를 복수로 겸영)에 임대하는 채널은 전체의 35%를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도 PP의 발을 묶고 있다.

윤 교수는 이같은 규제에 대해 "다채널방송사업자의 채널 운영과 구성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영업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지적도 있다"며 "채널합산 시청점유율 상한선규제 등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상파방송 재방 또 재방.."PP 경쟁력 키울 토양 만들어야"

국내 PP 수는 2009년 기준 197개(홈쇼핑 포함)이다. 이 중 하루 평균 시청률 0.5% 이상은 지상파 PP 3개와 CJ미디어, 온미디어 등 MPP(복수 프로그램제작사업자)가 소유한 채널에 불과하다.

이처럼 영세한 PP가 난무한 것은 PP등록제로 콘텐츠 제작 능력이 없어도 PP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의 대부분이 지상파 콘텐츠 재방송으로 채워지는 것도 영세 PP 난립의 이유가 되고 있다.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아도 지상파방송 콘텐츠를 재방송함으로써 매출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KBS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 등 인기 프로그램들은 5~8개 채널에서 한 주 평균 200~400회씩 재방송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PP 채널 활성화를 위해 지상파 재방송이라는 케이블TV의 기존 이미지를 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는 이를 위해 영세 PP를 퇴출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경쟁력 있는 PP에 시청자가 기억하기 쉬운 채널번호를 부여하는 등 방법으로 지상파 재방송과 겨룰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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