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안국동(安國洞)의 동 이름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김안국(金安國·1478~1543)에서 비롯됐다. 성품이 어질고 근검한 김안국은 흐트러짐이 없기로 유명했다. 어느 날 평소에 그를 흠모하던 '박 낭자'가 담장을 넘어 그를 찾았다. "학문에 지장이 있으니 물러가시오"라며 김안국은 낭자를 혼내며 내쳤다. 세월이 흘러흘러 김안국은 과거시험에 합격해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지만 누명을 써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때 그를 구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박 낭자였다. 박 낭자는 "김안국은 곧은 선비로 그럴 리 없다"며 왕비를 몸소 찾아가 설득했다고 한다. 옳은 길을 걷게 해준 김안국에게 박 낭자는 과거의 처신을 반성하고 보은했다는 이야기.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허생전' 무대 묵정동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의 배경은 남산 아랫마을 중구 묵정동(墨井洞)이다. 조선 정조 시대 이 마을은 가난한 선비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했다. 허생전의 주인공 허 생원도 관직에 나가기 위해 공부하던 '남산골 샌님'이었다. 7년 넘게 아내의 삯바느질 수입으로 근근이 연명하던 허 생원은 가난을 못 이겨 장안 갑부 변씨를 찾아가 거금을 빌렸고 그 돈을 밑천으로 장사를 벌여 큰돈을 벌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번 돈을 전부 나누어주고 다시 남산골로 들어가 청빈하게 살았다고 한다.
정월 보름엔 광교로 가세요
비 맞으면서도 백성 걱정한 유관 정승
조선 초기 명신 하정 유관(夏亭 柳寬·1346~1443)은 올곧은 청백리 정신으로 유명한 정치가다. 정승까지 올랐던 그는 지금의 종로구 창신동(昌信洞) 북쪽 산기슭에 살았다. 그는 욕심이 없고 청빈해 울타리도 없는 초가삼간에 만족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방안에 빗물이 흘러들었지만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방안에서 우산을 들고 여유 있게 책을 읽던 유관을 보며 부인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우산이 없는 사람은 오늘 같은 빗속에서 어떻게 지낼까." 이런 유관의 집터엔 소나무 열 그루가 우산처럼 서 있었다고 전한다. 오늘날 동대문에서 청량리로 가는 '하정로'는 유관 정승을 기념하기 위한 도로다.
간절한 신부의 바람 담긴 '인왕산 붙임바위'
자료 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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