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1편에서는 신용분석의 3대축 가운데 신용평가사에 대해 주로 다루었으며, 2편은 투자자인 자산운용부문과 증권회사의 신용분석에 대한 것입니다.)
회사채 가격체계는 신용등급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직접신용시장의 신용분석도 평가사의 신용등급에 대한 검토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신용등급을 추종한다면 시장의 신용분석은 의미가 없다. 시장은 신용등급의 적정성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변화 방향을 예측하여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한다.
시장은 대개의 경우 평가사의 신용등급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지만, 때로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스프레드 확대는 평가사 신용등급의 신뢰도를 도마 위에 올리는 것과 다름없고, 당국의 규제정책에 대한 입장표명은 신용평가사의 존립기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밀고 당기면서 관계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다.
◇ 자산운용부문 신용분석의 비약적 성장
최근 수년간 자산운용부문의 신용분석은 신용분석의 3대 축 가운데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2000년 채권시가평가 도입 당시만해도 자산운용부문에서 신용분석 전문인력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기관에서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회사채 투자규모가 작아 신용분석 전문인력이 입지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는 기관도 있고, 반대로 적지 않은 회사채 투자규모에도 불구하고 전문인력 없이 꾸려가는 기관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신용분석 전문인력 확보의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회사채 투자확대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카드위기 이후 시장의 불안심리로 인해 등급과 가격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상당 기간 지속되었고, 적극적으로 회사채 투자에 임한 투자자들은 모두 높은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도 꽃이 피는 일방적인 흐름에서는 오히려 신용분석 전문인력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는다. 일방적인 스프레드 축소의 계절이 지나고 저평가 종목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진검 승부가 시작되는 재미있는 상황이다.
회사채 투자확대의 필요성은 다분히 상대적이다. 국고채 중심의 자산운용이 어려워질수록, 경쟁자가 회사채 투자에 적극적으로 임할수록 회사채 투자확대의 필요성은 커진다. 이미 그런 흐름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자산운용부문의 신용분석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 자산운용부문의 신용분석 네트워크
조직의 연륜이나 규모를 생각한다면 개개 자산운용조직의 신용분석 역량을 평가사와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산운용부문 전체의 신용분석 역량은 그리 간단한 수준이 아니다. 판단 하나하나에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절박함도 있겠지만, 시장에 폭 넓게 형성된 네트워크의 현실적인 위력 때문이다.
신용분석에서 나 홀로의 판단은 항상 위험하다. 원론에 입각한 토론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자산운용시장의 여건에서 개별 기관이 내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조율할 만큼 충분히 많은 신용분석 전문인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시장의 네트워크는 이러한 제약을 해결하는 현실적인 방편이며 그 자체가 새로운 위력을 낳는다. 리스크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는 쏠림을 만들고 이는 다시 평가사에게 전에 없던 압력이 되고 있다.
사실 네트워크라는 성격 규정은 매우 조심스럽다. 귀 밝고 입 무거운 것이 미덕인 자산운용부문의 문화도 그렇거니와 현실적으로 기회까지 공유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리스크 요인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 형성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시장의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공유 이상의 신용위험 관리수단은 없다는 점이다. 시장의 아이큐는 2,000 이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 증권회사 신용분석의 화려한 꿈은 그냥 꿈인가?
2000년 채권시가평가 도입 이후 시작된 시장의 신용분석 역사에서 증권회사 페이지는 빈약하기 그지 없다. 신용분석 전문인력도 얼마 되지 않고 역할도 매우 제한적이다. 하지만 꿈만은 화려하다. 아니 오히려 꿈만 놓고 보면 다른 어떤 부문도 이만큼 화려할 수는 없다.
기업금융 업무의 비중확대는 주요 증권사의 중장기 비전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다. 이러한 비전이 실현된다면 신용분석 역량은 당장 수십 배 확충되어야 한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신용분석 역량은 평가사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비전은 좀처럼 알을 깨지 못하고 있다.
회사채 시장에서 증권회사의 역할은 기업금융(IB)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단순중개업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기업금융의 부진은 회사채시장의 성장과 안정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딱히 한가지의 모순 때문이 아니라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정도로 이런 저런 모순이 뭉쳐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적으로 증권회사 스스로가 기업금융에서의 가치제고에 소극적이다. 어느 정도의 리스크 부담이 필수적이지만 위기의 경험과 인식의 부족으로 극히 보수적인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리스크 부담을 적정수준으로 관리할 수단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영양가 있는 대형 거래는 모두 외국 투자은행(증권회사)의 차지가 되고 있다.
제도적인 모순도 매우 큰 걸림돌이다. 수천억원의 회사채발행절차가 십수억원의 기업공개만도 못하다. 특히 해외채권 발행절차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회사채 투자자들은 역차별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특정 국책은행에 의한 시장 싹쓸이도 큰 부담이다. 연못 속의 고래 때문에 도무지 시장의 질서를 세우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가야만 할 길이라면 한걸음이라도 먼저 내딛는 것이 정답이다.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해서 못하는 것이다. 이미 이런 저런 변화가 태동하고 있다. 카드위기 이후 회사채 소매시장의 급성장을 보자. 초반에 이를 주도한 증권회사가 탁월한 성과를 올리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질투는 나의 힘이다(Jealousy is my middle name).
최근의 은행대전이나 금융규제완화에서는 보다 큰 그림을 엿볼 수 있다. 구조조정기에서 확장기로 넘어가는 고비에서 기업금융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너무 큰 기회이자 해볼만한 도전이다. 그리고 이에 다가서기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열쇠가 바로 신용분석 역량이다.
◇ 보다 깊은 대화가 시장의 발전을 이끈다
생태계의 놀라운 균형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만들어진 절묘한 역할나누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네 금융시장도 다양한 형태의 생존경쟁과 역할나누기를 통해 매일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간다. 회사채신용분석도 마찬가지다.
회사채시장과 신용평가는 조금씩 입장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며 서로가 서로를 끌어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따라서 최근 평가사 서비스 향상에 대한 요구가 급격히 커지는 현상은 시장의 신용분석 역량 향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다.
시장은 평가사에게 보다 실질적인 기여를 구하고, 평가사는 이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의의와 방향성을 확인한다. 평가사 서비스의 품질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시장발전을 위한 고민을 나누고 지혜를 모으는 대화의 과정이다. 보다 깊어진 대화는 또 한걸음의 시장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윤영환/굿모닝신한증권 기업분석부 연구위원/Credit analy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