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보톡스 균주 기원 논란 키우는 질본

  • 등록 2019-05-26 오후 3:09:33

    수정 2019-05-26 오후 3:09:33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보톡스’로 잘 알려진 보툴리눔톡신은 사실 맹독성 세균이다. 미국, 유럽 등은 기업에 허가를 내줄 때 균을 제대로 연구하고 관리할 능력과 경험이 있는지를 엄격하게 따진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보툴리눔톡신을 상용화 한 기업은 앨러간 등 4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내 보톡스 관련 기업은 10곳이 넘는다. 동물사료 기업, 치과용 임플란트 기업도 보톡스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든다. 업계에서는 균을 관리할 의무가 있는 질병관리본부가 일을 제대로 안 하다 보니 너도나도 뛰어드는 모양새라고 지적한다. 보톡스균은 발견 즉시 질본에 신고를 해야 하고 질본은 현지실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 과정이 불법이 합법화하는 단계로 변질됐다. 그동안 대다수 국내 업체는 모두 자체적으로 확보했다고 질본에 신고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업계 관계자는 거의 없다. 질본이 허술하게 관리하니 불명확한 방법으로 균을 확보해 질본의 허가만 얻으면 정식으로 균을 확보한 것으로 간주, 상용화의 걸림돌이 없어지는 것이다. 업계에는 ‘균주 브로커’가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4억원 정도면 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도 떠돈다.

확보한 방법이 떳떳하지 못하다 보니 여러 비과학적인 해명이 판을 친다. 최근 정부 주최로 열린 기업소개 행사에서 한 업체 대표는 “국내에서 균을 발견한 기업으로부터 정식으로 균을 도입했는데 상용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효율성이 떨어졌다. 2년 정도 고생을 해서 활성을 높이는 연구를 진행했고 연구를 마치고 보니 ATCC3502 균주였다”고 말했다. ATCC3502는 미국에서 100년 전에 발견된 균주로 멀츠가 ‘제오민’이라는 상품으로 상용화했다. 국내에서 발견된 균주를 2년간 개량을 했더니 100년 전 미국에서 발견된 균주와 같아졌다는 것이다.

썩은 소시지나 상한 통조림, 오염된 흙 등 산소가 없는 혐기성 환경에서 자라는 보톡스균을 눈 덮인 산속 흙에서 찾았다는 기업도 있고, 부패한 통조림에서 균을 찾았다고 신고했다가 나중에 폐기처분하는 음식물을 수거해 부패시켜 균을 배양해 찾았다고 말을 바꾼 회사도 있다. 모두 과학적으로 충분히 의심이 가는 상황이지만 질본도 전문가들도 누구하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질본은 생화학 테러의 재료로 이용될 수 있는 맹독균을 관리하는 기관인지 보톡스를 국가 미래 먹거리로 적극 장려하는 기관인지 입장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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