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먹은 ‘베이커리 빵’ 어디서 온 재료지?

ㆍ파리바게뜨·뚜레쥬르·크라운베이커리 등 체인점 즉석조리 빵
ㆍ‘중국산 유제품’ 사용여부 등 원산지 표시 법적의무 없어 불안
ㆍ업체들 자체 멜라민 확인작업 중… ‘양심’에 의지해야 하나
  • 등록 2008-10-09 오전 11:00:00

    수정 2008-10-09 오전 11:00:00

[경향닷컴 제공] 사정을 알고 나면 먹을 게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모르는 게 약’일까. 그렇지 않다. 원재료가 어디에서 왔고 누가 완제품을 만들었는지 알아야 그나마 깨끗하고 안전한 식품을 골라 먹을 수 있다. 내 돈 주고 사먹는 음식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소비자는 식품에 관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중국산 분유에서 검출됐다는 멜라민 파동이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멜라민이 무엇인지 따위는 모르고 살아도 좋으련만, 덕분에 시민들은 과학 공부를 또 한번 세게 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지 불과 몇 달 만의 일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과자의 성분을 검사하느라 정신이 없고, 제과업체는 물건을 회수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과자만 문제일까. 재료로 유제품이 사용되기는 빵도 마찬가지 아닌가.

해태제과, 롯데제과 등 국내 제과업체가 생산하는 제품은 포장에 재료의 원산지가 적혀 있다. 그 정보가 충분히 자세하지는 않아도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어느 정도 참고가 된다. 그러나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크라운베이커리 등 대형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는 원산지를 표시할 법적 의무가 없다. 제과업체와 비교해 매출액이 결코 적지 않고, 국민들의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데도 말이다. 아침에 먹은 빵이 어디서 온 재료로 만든 것인지, 소비자들은 알 길이 없어 불안하다.


빵은 안심해도 괜찮을까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이 산다는 서울에는 대형 베이커리 체인점이 없는 동네가 없다. 한 집은 반드시 있고, 때로는 두 개의 다른 체인점이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파리바게뜨는 전국에 1400여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파리바게뜨의 모회사인 SPC그룹은 지난해 제과·제빵업계 매출액 부문에서 롯데제과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규모가 있다. 대기업 CJ의 자회사인 뚜레쥬르도 덩치가 크다. 지난 7월 매장 수가 1000호점을 돌파했다.

집 가까운 곳에 이런 빵집이 한두 군데 있으니 드나들기도 편하다. 두 아이의 엄마인 직장인 김희연씨는 퇴근길에 동네 베이커리 체인점에 들러 아이들 간식거리를 산다. 다른 엄마들처럼 직접 빵을 만들어주고 싶기도 하지만 회사일과 집안일에 쫓겨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김씨가 멜라민 뉴스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이들에게 자주 먹였던 빵이었다. 그 집 빵은 괜찮은 것일까? 혹시 중국산 유제품이 들어간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바구니에 빵들이 누워 있는 광경은 익숙해도 원산지를 확인하고 구입했던 기억은 없다.

지금 소비자들은 김씨와 비슷한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파리바게뜨’를 입력해봤다. ‘연관검색어’ 맨 윗줄에 ‘파리바게뜨 멜라민’이 뜬다. 뚜레쥬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뚜레쥬르 멜라민’이 첫번째 연관검색어다. 네티즌들끼리 묻고 답하는 지식인 서비스에도 관련 질문이 등록돼 있다. “파리바게뜨 빵에도 멜라민이 들어가나요?”

다행히 이들 업체의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뉴스는 없다. 네티즌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해 본 것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걱정을 기우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빵의 포장지는 물론이고 매장의 그 어느 곳에도 원산지 정보를 따로 게시해놓지 않았으니 중국산이 사용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산 식품의 악명이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요즘 멜라민 분유가 말썽이지만 중국에서 제조된 식품이 문제가 된 적은 이전에도 심심찮게 있었다. 올해 초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생쥐머리 새우깡’은 농심의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었다. 무게를 늘리려고 꽃게에 납을 넣었다는 ‘납꽃게’(2000년)와 기생충알이 검출됐던 김치(2005년)도 중국에서 건너온 식품이다. 지난 2월 일본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들어간 중국산 ‘농약 만두’가 파문을 일으켰다.

진상이 드러난 게 이 정도인데 다른 식품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난 8월 출간된 ‘중국 식품이 우리 몸을 망친다’는 중국산 식품의 위생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책이다. 업자들이 이발소에서 사들인 머리카락으로 간장을 만든다거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양식장 물고기에게 피임약과 호르몬 사료를 먹인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중국산이라면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는 소비자들의 정당한 방어기제다.

베이커리 체인업체들은 행여 불똥이 튈까봐 서둘러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 식약청의 조사 대상은 아니지만 업체들 스스로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뚜레쥬르 관계자는 “품질 담당 직원들이 2차, 3차 원료까지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멜라민 검출이 의심되는 제품은 없었다”며 “지금도 계속 원재료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도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산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불가피하게 원료의 극히 일부분을 중국산으로 쓰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중국산이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면 소비자를 위해 원산지를 속 시원하게 밝히는 것은 어떨까. 이 관계자는 “공개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관련 법규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기업의 ‘양심’을 믿어야 하나

베이커리 체인업체가 판매하고 있는 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식빵처럼 매장에서 직접 만들 여건이 되지 않는 제품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 각 점포로 배달한다. 이런 봉지빵은 포장에 원산지를 밝혀야 한다. 비중이 50% 이상인 재료가 있다면 그것만 미국산, 캐나다산 등 원산지를 표기하고, 50%를 넘는 재료가 없을 때는 많이 들어간 순서대로 2~3가지 재료의 원산지를 기재한다. 나머지 재료는 나라 이름을 쓰는 대신 ‘수입산’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허용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매장 진열 품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즉석조리 빵이다. 재료를 본사가 대량 수입한다는 점은 봉지빵과 다를 게 없는데도 다만 매장에서 직접 만든다는 이유로 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즉석 조리식품에 해당되는 제빵 제품의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이 법규대로라면 구매자들은 기업의 ‘양심’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하지만 제빵업체들은 자신들도 미비한 법 제도의 피해자라고 말한다. 정부의 식품안전 관리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생쥐머리 새우깡’ 사태가 터진 이후부터라도 수입 식품의 안전성에 신경을 썼다면 몇 달 만에 다시 멜라민 파동이 생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누가 어디서 어떤 식품을 수입했는지 목록도 가지고 있지 않다가, 일이 터지면 그때서야 기업한테 리스트를 넘겨받아 검사를 실시한다”고 꼬집었다. 먹거리 안전에 관한 정부 차원의 예방 대책이 사실상 없다는 주장이다.

식품에 관련된 행정 부처들의 업무 체계가 어수선한 것은 사실이다. 농·수·축산물의 생산 단계는 농림수산식품부 관할이다. 반면 음식점 원산지 표시와 유통은 보건복지가족부가 관리한다. 산지에서 도시로 배달되던 한우가 트럭을 떠나 식당으로 들어가는 순간, 관할부처가 농식품부에서 복지부(식약청)로 바뀌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업무 분장이 부처 간 책임 소재를 불명확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녹색소비자연대 조윤미 본부장은 “예를 들어 치즈 생산은 농림부 소관인데 이 치즈가 피자집으로 들어가면 식약청 책임이 된다”며 “식약청으로 치즈가 넘어가길 기다렸다가 ‘너희가 단속하라’고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 안전을 책임지는 단일 기구가 없으니 식품 정책을 종합적으로 수립하는 주체가 없다. 사고가 터졌을 때 관련 부처가 서로 입장과 업무를 조율하느라 일관성 있고 신속하게 대처하기도 어렵다.

식품 관련 행정체계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식품안전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는 ‘식품안전처’ 신설 법안이 추진된 바 있다.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식품안전처가 설치되면 식약청을 폐지하고 식약청에서 의약품을 관리하던 조직은 복지부 소속 본부로 재편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국무총리실 전문위원으로서 식품안전처 설치를 준비했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곽노성 박사는 “의약품 업계의 위상이 낮아질 것을 우려한 약사 단체가 격렬하게 반대했고 한나라당도 정권 후반기에 정부 조직 개편을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해 당사자가 많아서) 식품안전 업무를 일원화하는 게 쉽지 않다”며 “대형 식품 사고가 여러 차례 터지기 전까지는 노무현 정부 내에서도 일원화를 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말했다. 식품안전처 신설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바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부서별 개편안과 관련 법률 개정안까지 모두 마련해 놓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멜라민 파동이 일어나자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지난 5일 식품안전처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한다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같은 당 백원우 의원도 지난 4일 식품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이 터진 후에야 입법 경쟁을 벌이는 ‘사후약방문’인 셈이다.

조윤미 본부장은 “지난 정부에선 불량만두 등 대형 사고가 많아서 수입식품의 안전 관리에 관한 논의가 깊은 반면 이명박 정부는 그렇지 못했다”며 “지난 정부의 노력을 사장시킨 후에 이를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이 여론에 편승해 경쟁적으로 법 개정 계획을 공표하는 중에도 멜라민 과자는 추가로 계속 발견되고 있다. 해태제과에 이어 롯데제과, 네슬레 등 대형 업체의 제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가 식품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종합 대책을 수립할 수 있을까. 베이커리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식품 안전 정책을 제대로 펴야 기업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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