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차분히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 구상이나 가다듬으면 적당할 시기에 세계 외환시장은 딱 1년만에 그 더러운 성질(?)을 다시 부리기 시작한 달러/엔 환율로 인해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연말 환율을 1270~1280원대, 혹은 조금 더 그 아래쪽까지도 바라보던 한두 달 전의 분위기는 지금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레벨 불문, 시점 불문, 연일 엔화약세 현상에 채찍을 가하는 일본 관료들의 발언과 정책결정으로 인해 달러/엔은 130엔 돌파를 목전에 둔 채 140엔이나 150엔까지의 추가상승 가능성이 여기저기서 보도되며, 그 여파로 뜻하지 않은 고생을 겪게 될 우리나라 기업들과 외환당국, 그리고 시장참여자들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시기입니다.
모두가 달러/엔은 더 올라가고(엔화약세는 가속화되고) 우리 원화환율도 그에 따라 달러대비 약세(환율상승)를 보일 수 밖에 없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나도 달러매수를 권하고 싶다라고 쓸 것이라면 오늘 칼럼은 이 정도의 프롤로그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침없이 환율이 오르는 와중에도 이 정도에서는 달러를 팔겠다는 세력들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등락을 거듭해 가며 큰 그림을 완성해 가는 것이 시장입니다. 한 주간의 거래를 마치고 시장이 쉬고 있는 주말을 이용해 이리저리 차트와 뉴스들을 뒤지며 생각을 가다듬다 보니 "멀리서 보는 숲과 숲 안에서 보는 나무들"이라는 표현이 생각나는군요.
◇어느덧 Critical level에 이르렀다.
USD/JPY: 1998년 8월 11일 147.64엔에서부터 1999년 12월 한 달 동안에 걸쳐 바닥으로 다진 101.40엔 레벨까지의 달러 하락추세에 대한 61.8% 되돌림 수준에 거의 다 이르렀다.(차트가 없어도 계산기만 있으면 이런 Retracement level은 짚어낼 수 있다. 147.64-101.40=46.24 → 46.24×0.618=28.57 → 101.40+28.57=129.97)
보통 저런 레벨들은 한 번에 뚫리거나 밀리는 경우는 드물다. "이 정도면..."하는 차익실현 세력들과 "아니다, 더 가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추격매수세(매도세)간의 공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서 누구 힘이 더 센지를 살펴본 뒤에 방향을 잡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130엔의 돌파가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나면 기술적으로 보아서는 달러/엔의 다음 그림은 아주 무서운 그림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Weekly chart로 살펴보았을 때 1999년 1월에 108엔대 중반과 110엔대를 오가며 형성한 왼쪽 어깨(Left shoulder), 그 해 말에 104엔대 초반에서 만들어진 머리(Head), 그리고 금년 9월 하순에 기록한 116엔대가 오른쪽 어깨(Right shoulder)를 형성하면서 Reverse Head & Shoulder 패턴이 완성될 경우, 130엔을 한 번 건드려 보는 정도가 아니라 확실하게 뚫고 올라서는 상황으로 발전한다면 왕년의 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교수가 주장하는 달러/엔 140엔이나 150엔이 "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반면 그리 되면 일본도 미국도 아시아권 국가들도 마냥 웃을 수 있는 형편이 될 수 없기에 130엔의 돌파 전에는 다소 신경전이 펼쳐질 수 있으며, 그래서인지 지난 주말 하야미 일본은행(BOJ) 총재는 동경시장이 휴장하는 24일을 염두에 두고 최근 엔화약세가 너무 급격하다는 속도조절용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EUR/JPY: 최근의 달러/엔 강세는 달러의 엔화대비 강세보다는 유로/엔의 급등세에 기인한 바가 더 크다. 지난 11월 중순 1유로당 107엔 정도에서 거래되던 것이 지난 주에는 117을 위협할 정도로 유로화의 엔화대비 강세가 그 동안 두드러졌었는데, 유로/엔의 경우도 1998년 10월의 162.50 레벨에서 2000년 10월의 89.50까지의 하락세에 대한 38.2% 되돌림 수준이 코 앞에 다가온 관계로 숨고르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럽 사람들 생각에도 연말을 앞두고 Euro long against Yen 포지션으로 한 상 잘 차려 먹긴 했는데 정말 더 가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도 없고 걱정도 좀 되는 모양이다.
USD/KRW: 지난 7월 24일 1314.50원을 찍은 이후 1275원까지의 40원 가까운 하락세, 10월 4일 1316원 터치 후 1262원까지의 54원 급락세를 경험한 다음의
삼세판 1315원 공략시도가 일단 주춤하고 있는 장세다. 우선 12월 21일 아침에 발생한 상승 갭(그 날의 저가 1307.50원과 20일의 고가 1301.70원 사이의 빈 공간)을 어떻게 해결하고 넘어갈 것인지가 1차 관건이다. 연말까지, 그리고 해가 바뀌고서도 며칠 이내에 메워지지 않고 달러/원 환율이 추가상승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면 그 갭은 급진 갭(run-away gap)의 성격을 띄면서 향후 달러/원 급등세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감당할 것이고(달러/엔의 130엔 돌파라는 모멘텀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 26일이나 27일 정도에 그 갭이 채워지거나 아침에 갭다운 장세가 펼쳐진다면 그 갭은 상승장의 막바지에 나타나는 소멸 갭(exhaustion gap)이 되면서 1315원 부근의 레벨은 다시 한 번 의미있는 레벨로 굳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동안 필자가 주장해 온 조정 4파 가설은 포기하지만...
본 칼럼을 통해서 지난 몇 주간 제기해 온 조정 4파로서의 달러/원 상승장세라는 가설은 이제 버렸다. 조정 4파로 보기에는 상승폭이 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미세파동 또한 상승 충격파동으로서의 모양새를 훌륭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엔이 당장 진정되지 않는다면 우리 환율도 아래쪽으로 회귀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 보았듯이 엔이나, 유로, 원화 할 것없이 모두 중요한 레벨에 이르러 다음 방향을 설정하기에 앞서 고민하는 시점에 이르렀고 새해를 며칠 앞 둔 시점에서 뉴욕 증시를 비롯한 세계 증시의 방향성 또한 불투명한 시점이라 큰 베팅을 거는 것은 아무래도 다음 달로 미루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달러/엔으로 인해 야기된 최근 환율급등세인 만큼 달러/엔이 정말 130엔을 넘어서서 계속 뻗어 가느냐 여기서 안정세를 보이느냐가 제일 먼저 살펴 보아야 할 변수이지만, 달러/엔이 고만고만하게 움직이며 시간을 버는 양상이 펼쳐진다면 시장은 다시 달러수급요인과 주식시장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
"서울에서는 역시 달러다."라는 인식이 연말을 앞 둔 환율 급등장세를 두 해 연속 경험하면서 다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주가든 환율이든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은 거품(bubble)이라고 생각한다. 튼실한 거래량이 받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가격은 허상일 수가 있다는 얘기다. 히라누마 일본 경제산업상이 "추가적인 엔약세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월요일 아침에 보도되고 있다. 뭘 어떡하자는 얘긴지 저들의 내심을 읽고 쫓아가기도 참 피곤한 노릇이다.
숲을 보되 그 숲을 이루는 나무들도 살펴야 한다. 마냥 달러매수를 외치기에는 이미 좋은 레벨들은 다 지나쳐 버린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