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 하면 터지는 불법 리베이트 사건으로 제약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워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에게 명함을 꺼내면 공통적으로 “참 힘든 일을 하시는군요”라는 반응이 나오더군요.
사람들은 제약 영업직을 가장 힘든 직업군으로 꼽기도 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다른 영업직보다 제약 영업은 기존 거래처 관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업무 강도가 세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전문지식으로 무장해 엘리트 층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자부심도 상당합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장 큰 고충은 고객 관리가 까다롭다는 점입니다. 의사와 제약 영업사원은 완벽한 ‘갑을 관계’가 형성돼 있습니다. 제약사들이 판매하는 제품들이 대부분 유사하다는 이유로 거래처 의사 눈 밖에 나면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큽니다.
예전보다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영업사원들은 의사 요구는 무엇이든 들어줘야 하는 ‘을’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가족들과 편히 쉬고 있다가도 의사의 호출에 술값을 내러 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처방금액에 따라 현금이나 물품을 직접 주거나 골프접대하는 것은 아주 평범한 사례입니다. 때로는 담배나 빨래 심부름도 당연하다는 듯 주문하는 의사들도 있었습니다. 동료 중 한명은 예비군 훈련을 대신 가줄 수 없냐는 요청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네요. 얼마 전 한 후배는 의사가 ‘허니버터칩’을 구해달라고 해서 인근 편의점과 마트를 샅샅이 뒤지는 고생도 했더랍니다.
몇 년전부터 리베이트 처벌 규정이 엄격해지면서 제약사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물론 제약사들도 굳이 돈을 안 들이고 영업을 할 수만 있다면 대환영이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다양한 방법을 찾아나섰습니다. 부작용조사나 임상시험 비용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기도 했고, 설문조사나 동영상 강의를 빙자한 금품도 준 적이 있습니다. 의사들의 월세도 대신 내주거나 명품 지갑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리베이트로 적발돼 처벌을 받는 것보다 당장 눈 앞의 매출이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리베이트 적발이 우려된다며 회사에서 영업사원들에게 아예 판촉비를 주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상 영업사원이 재주껏 영업을 해서 목표 매출을 채워오라는 거죠.
거래처에서의 불신도 어느덧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강화된 리베이트 규제에 동료 의사들이 행정처분을 받는다는 소식에 일부 의사들은 제약사 탓으로 돌리기 일쑤입니다. 의사들은 제약사가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합니다. 아예 ‘영업사원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병원 문 앞에 걸어놓은 곳도 있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영업을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제약사의 영업 목표는 처방 증대입니다. 그러나 처방을 늘리기 위한 판촉활동의 상당수는 불법이라고 합니다. 수금액의 일부를 떼어주는 에누리도 여기서는 리베이트라고 하네요.
혹자는 왜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않느냐고 닥달하지만 글로벌 신약을 만드는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합니다. TV채널만 돌리면 나오는 휴대전화 광고처럼 의약품은 광고도 자유롭게 할 수도 없습니다. 무조건 안된다고 옥죄는 것보다 왜 개선이 안되는지 한번쯤 같이 고민해보는건 어떨까요.
*이 기사는 제약사에 근무 중인 영업사원들에 대한 취재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