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5월 25일자 28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비단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쇼만이 아닙니다. `쇼` `동물공연`이라는 표현부터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물 중에는 사람과 쉽게 교감하는 동물이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동물도 있어요. 사육사와 완전한 교감을 이룬 동물이라면 `스토리텔링` 같은 활동을 통해 동물의 특성이라든가, 인간·동물과의 관계, 또 동물을 보는 관점 등에 대해 나눌 수 있는 많은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 오석헌(34) 삼성에버랜드 동물원 리조트사업부 선임수의사. (사진=한대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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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쇼`를 놓고 여전히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시초였다. 불법 포획된 돌고래 제돌이의 처리문제로 시작된 돌고래 쇼 존속 논란은 `동물원의 미래`에 대한 토론회로 번졌다. 가장 자연적인 것이 정치적으로 바뀐 셈이다.
오석헌 씨(34)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삼성에버랜드 동물원에서 일 한지 7년차 수의사다. 이곳에서 그는 200여종 2000여마리의 동물들을 돌보고 있다. 동물들의 복지와 보전, 연구 활동도 그의 일중에 일부다.
"현재 동물원은 휴식과 교육이라는 기능에 많이 집중돼 있지만 국내 동물원도 연구, 보전 활동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어요. 동물들에게 완벽한 자유를 보장해 줄 수는 없지만 동물들마다 가장 적합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동물원 측의 노력도 다양해졌고요. 종 보전과 야생동물의 중요성을 알려줄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작은 단순했다="동물은 아플 때 누가 치료해주지"라는 생각이 출발점이 됐다. 수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때였다. 어릴 적 동네 친구집 강아지가 쥐약을 먹고 정신을 잃은 광경을 목격했던 충격이 컸다.
"주위에 죽어가는 동물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에 치이기도 하고, 건물이나 여타 인간 활동에 의해 죽어가는 동물들. 훨씬 오래 전부터 주인이었던 동물들에게 늘상 사람의 입장에서만 봐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고민이 생기면서 야생동물에 관심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 ▲ 어릴 적 이른바 `똥개`, 바둑이(잡종)를 키웠다고 했다. 이외에 더 이상 특별할 게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왠지 많은 게 숨겨 있을 것 같아 더 강도를 높여 캐물었다. 그때서야 이야기 보따리가 풀렸다. 오석헌 수의사도 미처 잊고 있었던 얘기들을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사진은 오석헌 수의사(34)가 작은 나무늘보 새끼의 건강상태를 진찰하는 도중 작은 나무들보가 오씨의 얼굴을 핥고 있다. (사진=한대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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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 눈뜨다=알고 보면 그는 늘 그 언저리에 있었다. 공부도 못한 편이 아니어서 어렵지 않게 수의학과에 들어갔다. 농활처럼 방학을 이용해 봉사활동을 나서는 무(無)수의촌봉사는 그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줬다.
"한 두 마리의 소를 전 재산으로 자식처럼 키우는 어르신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어요. 트럭 뒤에 진료 장비와 약품 등을 싣고 시골길을 돌아다니던 그때가 젊은 수의학도로서 낭만을 만끽했던 시기기도 했구요."
관심 있는 친구들과 모여 `야생동물소모임` 활동도 시작했다. 벌써 9년째다. 지금은 전문가들도 많이 배출하고 국내 야생동물 관련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로 발전했다. 그는 짬이 나는대로 지리산, 설악산, 철원, 안면도, 남한산성 등지를 돌며 야생동물의 자취를 찾아 다녔다. 운이 좋으면 고라니, 너구리, 박쥐 등을 만났다.
"좀더 다양한 동물을 만나고 싶었던 때에 눈에 들어왔던 것이 에버랜드 수의사 모집공고였어요. 일반 동물병원은 개, 고양이, 농장의 소, 돼지, 토끼 등 제한적이잖아요. 또 공채처럼 매 시기마다 뽑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순간 딱 맞닥뜨려진 거죠. 운명이었나 싶었죠(하하)."
| ▲ 오석헌 수의사가 아기 사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취재 당시(4월23일) 아기 사자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이름도 짓지 않은 상태. 오 수의사가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있다. (사진=한대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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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함, 공포의 공존=일반 종합병원과 다를 바 없다. 정기건강검진, 초음파, 혈액검사, 치아 검사 등 사람이 하는 치료와 수술은 다 한다고 보면 된다. 처음 맹수 치료 때는 벅찼다고 했다.
맹수 검진은 마취 후 최단시간 안에 이뤄져야 사람과 동물 모두 안전한 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파리 창살을 사이에 두고 피부를 만졌을 때의 그 긴장감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그는 회상했다.
"맹수, 유인원류 등 야생동물들의 경우 대부분 증상을 발견하기 어려워요. 대변 등의 분비물을 안보이게 가리려는 경향도 짙고, 그 상황에 맞게 적절한 치료가 이뤄져야 해요. 보는 시야가 넓어야 하고 판단력이 있어야 하죠. 아직 국내에는 각 종별로 동물에 대한 체계적인 히스토리가 부족한 편이어서 해외 동물연구가들에게 자문을 구할 때가 많아요. 원서도 찾아보고 자료도 공유하면서 동물연구에도 몰두하고 있죠."
그는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에버랜드 공식 트위터에서 동물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들려주는 `애니멀도슨트`라는 코너로 일반인들과 소통도 하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야생동물의학 전문박사가 없어요. 그만큼 체계적인 학습 방법도 많지 않고요. 걸음마 수준이죠. 방향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실력과 경험이 우선이 돼야겠죠. 저처럼 야생동물의학의 전문의 꿈을 갖은 후배들에게 좀더 쉬운 길을 알려주고, 도움을 주는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