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떠나는 상품시장..해 바뀌어도 봄은 안온다

디레버리지 지속..상품가격 하락 압력
건설·자동차 산업 불황..상품 수요 감소
전문가들 "상품시장, 내년도 어려워"
  • 등록 2008-11-21 오전 11:08:55

    수정 2008-11-21 오전 11:08:55

[이데일리 김혜미기자] 사상 최악의 글로벌 경기둔화가 상품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오랜 신뢰를 뒤흔들고 있다. 단기적 변동성은 극심할 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늘 강세를 보여왔다는 상품시장이 너무 오랫동안,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가격 급락은 1차적으로 과매수 분석과 실수요 감소에 기인했지만, 추세가 굳어지면서 점차 투자자들의 포지션 청산을 불러왔다. 여기에 동시다발적인 전세계 경제 악화는 원자재 생산 기업들의 감산과 투자계획 철회로 이어졌고, 다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연일 발표되는 각종 경제지표들과 기업 상황들을 살펴볼 때 상품수요 회복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전문가들은 펀더멘털과 펀드들의 움직임을 살펴볼 때 상품 약세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 계속되는 `디레버리지` 압력

올 하반기 상품가격 하락세가 이어진 원인에는 수요 감소도 있겠지만, 금융시장 전반에 걸친 투자자들의 디레버리지 여파가 컸다. 금융위기로 인해 차입금을 상환해야 하는 투자자들이 상품 포지션을 대거 청산했고, 주가 급락과 달러 강세로 인한 현금 확보도 꾸준히 이어졌다.
 
포지션 청산은 여러 시장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예를 들어 금 선물과 옵션 계약은 7월 15일에 21만 9699계약이었지만 11월 4일에는 6만1165계약으로 급감했다.
  
▲ 주식시장과 상품 인덱스 추이(출처 : 모간스탠리)


또 주가 하락시에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상품 포지션 청산이 동시에 늘어나면서 상품가격이 동반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주가와 상품가격의 상관관계가 급격히 높아졌는데, 유가와 전세계 주식시장의 상관관계는 0.8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상관관계는 1에 가까울 수록 높다.)
 
디레버리지가 이어지면서 달러와 엔이 강세로 돌아섰다는 점은 다시 상품가격에 하락압력을 주고 있다.
 
달러와 엔 강세는 본래 디레버리지에 따른 현상으로 풀이됐지만, 투자자들의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과 안전성 확보 성향이 두드러지면서 반대로 상품가격 약세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디레버리지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연말까지는 헤지펀드들의 상품 포지션 청산이 추가로 예상된다.
 
빌 오닐 로직 어드바이저스 관계자는 "헤지 펀드들은 때로 매도보다는 보유를 원함에도 불구, 청산을 해야만 한다"면서 펀드 상환일로 인해 불가피한 포지션 청산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음을 설명했다.

◇ 구리 수입 감소, 경기후퇴 `장기 지속` 반증?

미국의 자동차 및 건설 산업 후퇴는 구리 시장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미국의 구리 수입량은 최근 가파른 감소세를 보여왔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 1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월 미국의 구리 수입량은 5만4515톤으로 전월대비 37% 감소했다. 올 9월까지 수입량은 전년동기 대비 13.6% 감소한 56만 1189톤으로 줄었다. 

구리를 상당량 소비하는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내 3개 자동차업체는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 정부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 세계 구리 재고량 증감(출처 : 씨티)


구리 소비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산업 역시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주택시장 조정은 좀체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주택 건설 등에 주로 이용되는 구리값은 전세계 경제를 평가하는 척도로 자주 이용된다.
 
구리 수입 감소는 자동차와 건설산업이 쉽게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는 점과 경기후퇴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

◇ 관련업체들, `불황 탈출하자`

바클레이즈 캐피탈은 지난 한 달 동안 금속 가격이 35% 급락했다고 밝혔다. 상품가격 약세는 대형 광산사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높은 인건비와 장비, 연료비로 인해 전세계 니켈 광산 30%와 아연 광산 15%가 수익성이 아예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관련기업들은 고육지책으로 광산을 폐쇄하고 인력 감축에 들어갔다. 남아프리카와 호주, 캐나다, 러시아 등지를 중심으로 광산 운영 중단과 감산이 이어지고 있다. 고속 성장가도를 달려온 철광석 광산업체인 리오 틴토와 CVRD가 생산량의 10%를 감축했고,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사인 알코아도 연간 생산능력의 15%를 축소했다.
 
2주 전 노스 아메리카 팔라듐사는 350명의 인력을 해고하고 라스데스 일즈 광산을 폐쇄했다. 블루노트 마이닝은 아연과 납 광산을 폐쇄하면서 해당 광산 노동자들이 모두 해고됐다.
 
하지만 공급에 비해 수요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감소한 만큼, 가격 유지를 위한 생산사들의 공급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UBS 은행은 앞으로 1년~1년 반 동안 원자재 공급이 수요를 앞지를 것으로 내다봤다.

◇ 상품시장 약세, 1년 이상 지속될 듯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경기후퇴가 적어도 1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고, 원자재값 전망치도 줄줄이 하향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구리 3개월물 가격 전망치를 톤당 7960달러에서 3500달러로 대폭 낮췄다. 맥쿼리 뱅크는 구리와 아연값이 내년에 각각 파운드당 1달러 70센트(톤당 3747달러)와 51.3센트(톤당 1130달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매년 100% 정도의 가격 인상률을 자랑했던 철광석 계약가격도 내년에는 절반 가량 인하될 전망이다. 호주 ANZ 은행은 중국 수요 감소로 인해 내년 철광석 계약 기준가격이 톤당 46달러로, 올해 93달러에서 크게 낮춰질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으로 수출된 철광석 현물 가격은 올해 59% 급락한 바 있다.

ANZ의 마크 퍼번 선임 스트래티지스트는 "많은 사람들이 전세계 경기 둔화가 금속 수요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처럼, 내년은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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