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기업적 성향인 공화당의 반대로 이를 막기 위한 입법이 사실상 불발됐지만 재무부가 독자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는 등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칼날은 전혀 무뎌지지 않고 있다. 특히 최대 약국체인인 월그린도 세금 줄이기용 본사 이전을 포기하며 미국 정부 압박에 굴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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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높은 법인세율을 피하기 위해 인수합병(M&A) 등의 방법으로 해외로 본사를 옮기는 기업들의 편법 행위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직접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 재무부는 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미국 기업들의 이같은 편법적인 세(稅)테크용 M&A를 막기 위해서는 의회에서의 입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은 만큼 정부 차원에서 부분적인 보완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재무부는 이처럼 본사나 일부 사업부문을 해외로 옮겨 법인세 부담을 줄이는 기업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세제 감면 혜택을 줄이는 한편 원천적으로 이같은 세테크용 M&A를 제한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당초 미국 정부와 민주당은 세금 회피용 M&A 승인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해 지난 5월8일 이후 합의된 M&A 딜까지 소급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보였지만, 공화당의 반발로 인해 입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의회 반대에도 미국 정부가 의지를 굽히지 않자 세금 회피용 본사 이전의 대표격이었던 월그린이 이같은 방침을 전격 철회했다.
이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 월그린이 영국 약국사인 알리안스 부츠의 나머지 지분을 60억파운드(약 10조5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6일쯤 완료하겠지만, 본사 이전 계획은 철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월그린이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게 되면 미국 정부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을 우려해 계획을 철회한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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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세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앞다퉈 해외로 본사를 옮기던 미국 기업들의 유행은 앞으로 잦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지난달 22일 존 와이든 미 상원 재정위원회 위원장이 공청회에서 “25곳에 이르는 미국 기업들이 이같은 절세용 해외 이전이나 M&A를 검토하고 있는데, 월가 투자은행들이 이들 기업을 부추기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더구나 재정위원회 추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해외로 이전한 미국 기업들로 인해 미국 정부 세수가 195억달러나 줄어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세수 확충을 통한 경기 부양을 노리는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에 제동을 거는 일이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최근 포괄적인 이민법 개정이 의회 반발에 부딪혀 지지부진한 가운데 경제 회복세도 둔화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을 지원하기 위해 국내 조세 형평성 문제를 새로운 화두로 꺼내든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다보니 미국 기업들로서도 당분간 몸 사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인세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려는 움직임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공화당은 세테크용 M&A 금지만을 노린 입법에 반대하면서도 포괄적으로 법인세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데에는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법인세율 자체는 높지만, 기업들에게 제공되는 각종 세금 감면으로 인해 혈세가 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만큼 법인세율은 낮추면서 이같은 세수상 허점(루프홀)을 메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