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갔던 작가…천으로 한옥 짓다

서도호 `집 속의 집` 전
6월3일까지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 등록 2012-04-04 오전 10:59:21

    수정 2012-04-05 오전 10:41:36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04일자 32면에 게재됐습니다.
▲ 서도호 작 `서울 집/ 서울 집`. 작가의 아버지 서세옥 화백이 창덕궁 연경당의 일부를 본 떠 지은 성북동 본가 한옥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 집에서 작가는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까지 살았다.(사진=리움 제공)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비가 내리면 마당에서 낙수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창호지 앞까지만 들어왔다 나갔고 뜰 안의 꽃은 피고 졌다. 고개 들면 노을이 보였고 처마 끝에는 초승달이 걸려 잠시 숨 돌리고 있었다. 태어나 살면서 한 번도 남다르게 감지하지 못했던 자연스러운 풍경들이었다.

30대 초반 유학생 서도호가 어느 날 뉴욕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문득 떠올린 건 자신이 자란 서울 성북동 본가 한옥이었다. 한옥의 정취는 서양의 그 어떤 공간도 만들어내지 못한 독창적인 미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다만 그 의미를 미처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학 초기 이국에서 느꼈던 어떤 열등감이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서도호는 본가의 사랑채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나무와 흙 대신 이용한 것은 천이었다. 사랑채를 실제 크기로 본 떠 연등을 걸 듯 허공에 옥색 천으로 된 집을 지어 걸었다. 그의 이름이 세계 설치미술계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됐다.

서울대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회화와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서도호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집 속의 집’이란 주제로 10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서도호는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비롯해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런던 서펜타임갤러리, 도쿄의 모리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하며 백남준과 이우환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아티스트로 명성을 쌓았다. 뉴욕과 베를린, 도쿄를 오가며 유목민의 삶을 사는 서도호는 집을 화두로 파격적인 작품을 발표했고 매번 평단과 관람객의 격찬을 받았다. 그가 천으로 선보이는 집은 디테일뿐만 아니라 집이 주는 다양한 소통의 가능성을 새롭게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옥의 쪽문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투영`, 미국으로 날아온 한옥과 아파트의 충돌을 5분의 1 축소모델로 표현한 `별똥별 1/5`, 높이 13m에 이르는 `청사진` 및 한옥과 뉴욕의 아파트가 중첩된 `집 속의 집` 등 집 시리즈와 작가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드로잉, 작업 모습을 담은 영상물 등 43점이 전시됐다. 대형 전시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시장 덕에 그의 집들은 주눅 들지 않은 채 본연의 구조를 유지하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홍라영 리움 총괄부관장은 “리움에서 생존 작가의 개인전을 연 것은 처음이다”며 “아직 젊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서도호 작가가 1962년생으로 쉰이 넘은 데다가 작가적 역량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전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6월3일까지. 02-2014-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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