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는 올해 국내 건설경기가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유례없는 해외건설 호황으로 버텨냈다. 해외 사업장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국내건설업체들의 목숨을 이어주는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사상최대 해외건설 수주
올해 해외건설은 18일 현재 467억달러라는 역대 최대 수주액에서 보듯 활황을 누렸다. 작년 같은 기간 392억달러에 비해서도 19% 늘었다. 공사건수는 615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602건에 비해 2% 증가했다. 공사건수보다 수주액 증가폭이 큰 것은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많았다는 의미다.
지역별로는 중동이 최대 수주처였다. 올해 중동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18일 현재 총 271억달러로 작년 한해 동안 벌어들인 228억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아시아 지역도 수주가 늘었다. 총 140억달러를 수주해 작년 한해 128억에 비해 12억달러가 증가했다.
중남미의 약진도 눈에 띈다. 작년 3억3000만달러에 불과했던 이 지역에서는 올해 24억7000만달러의 수주고를 올렸다.
공종별로는 여전히 플랜트 등 산업설비 분야 수주 실적이 가장 좋았다. 총 267억8000만달러로 252억6000만달러였던 작년 대비 15억2000만달러 늘었다. 과거 부진했던 토목·건축 분야도 작년에 이어 강세를 이어갔다. 올해 수주액은 88억달러로 작년 81억7000만달러에 비해 6억3000만달러 가량 증가했다.
신규 진출 국가도 늘었다. 올해 총 진출국가는 77개 국가로 작년에 비해 1곳이 늘었을 뿐이지만 새롭게 진출한 국가는 엘살바도르, 베네수엘라, 아이티, 베닝, 콩고, 시리아, 잠비아, 모잠비크, 르완다 등 9개국에 달했다.
작년부터 계속된 중소업체들의 진출도 여전했다. 예전에는 대형건설업체와 일부 엔지니어링사가 해외사업을 독식했지만 최근 들어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 물론 여전히 현대건설(61억달러), GS건설(51억달러), 대림산업(34억달러), SK건설(28억달러), 포스코건설(26억달러) 등 대형업체들이 강세였지만 중소업체들도 총 68억달러 이상을 수주하면서 해외 진출의 미래를 밝게했다.
◇ 대형 플랜트 수주 늘어
올해는 초대형 플랜트 공사 수주가 큰 폭으로 늘었다. 단일프로젝트로 20억달러가 넘는 공사도 2건이나 됐다.
SK건설은 쿠웨이트 아주르 신규정유공장 제2패키지 사업을 20억6000만달러에 수주했으며 GS건설은 같은 프로젝트 제1패키지 사업을 19억9000만달러에 따냈다.
이외에도 현대중공업의 바레인 알두르 민자발전담수플랜트 공사(17억4000만달러), 우림건설의 카자흐스탄 알마티 복합단지 개발사업(14억3000만달러), 대림산업의 쿠웨이트 아주르 신규정유공장 제4패키지(11억8000만달러) 등도 올 한해 국내업체가 수주한 초대형 공사 중 하나다.
◇ 4분기들어 발주 급감
하지만 올해 4분기에 들어서면서 해외건설 수주도 주춤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중동 산유국들의 발주 물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4분기 들면서 예정됐던 중동 산유국들의 발주가 지연 혹은 취소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약 120억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 신규 정유공장 사업은 입찰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애초 11월 중순께 입찰을 마감할 예정이었지만 올해 12월 말로 연기됐다가 다시 내년 상반기로 늦춰졌다.
90억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쥬베일 정유공장 사업 역시 유가 하락과 경기 둔화로 인해 입찰 마감일을 11월에서 내년 2월로 연기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육상오일운영회사(ADCO)가 발주하는 3억달러 규모의 가스압축시설 프로젝트도 내년 2월로 연기됐다.
카타르석유회사(QP)가 발주할 예정이었던 50억달러 규모의 알샤힌 정유공장 프로젝트 입찰은 전격 중단됐다. 발주처는 애초 기술제안서를 12월15일에 접수할 예정이었으나 무기한 연기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외에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바레인 등 다른 중동국가에서도 발주 연기와 취소가 이어지고 있다.
◇ 내년 `기대반 우려반`
토목·건축 분야의 신장세가 뚜렷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석유화학, 정유플랜트 중심의 사업구조는 국내업체가 극복해야 할 당면과제다.
특히 가스플랜트 등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사업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은 해외 업체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다.
한 대형건설업체 해외사업 담당자는 "솔직히 우리 업체들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다"라며 "현재로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결국 국내 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보다 발전된 기술력을 확보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지속적으로 진출하는 것밖에 없다"며 "이를 간과하면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때문에 내년도 해외사업 역시 `기대반 우려반`인 상황이다. 국제유가 하락이 내년에도 계속된다면 중동지역에서의 발주 증가 역시 기대하기가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외건설협회는 내년도 해외수주 예상액을 올해보다 적은 400억달러 정도로 보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올해보다 상황이 안좋은 것은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비관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작년과 올해 들어 해외진출에서도 변화의 양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중소업체들은 틈새시장을 노려 소규모 공사를 수행하면서 꾸준히 시공실적을 쌓고 있다. 중소업체들이 대형 프로젝트를 맡지 않고서도 100억달러가 넘는 수주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다.
전문가들은 "국내업체끼리 과열 경쟁은 반드시 피해야 하며 레드오션이 아닌 블루오션을 찾아내는 것이 성공적인 해외 진출의 열쇠"라며 "유가가 떨어지는 만큼 원자재 등 비용 절감도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출혈경쟁만 하지 않는다면 수익성이 악화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