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강국, 글로벌로 간다)<3부>(18)베트남, 거품과 성장 가능성 사이에서

부동산·증시 버블 논란..한국기업 적극
"거품 부담이지만 성장 외면할 순 없다"
  • 등록 2007-12-03 오전 11:20:00

    수정 2007-12-04 오전 10:04:38

[호치민=이데일리 안재만기자] "사실 한국이 지나칠 정도로 베트남에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 고평가돼있죠. 베트남의 땅값은 결코 서울에 비해 싸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욕만 갖고 베트남에 진출하는 건 분명히 `무리`입니다."

베트남 현지에 나와있는 한국 증권사 법인장 및 사무소장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같이 말했다. 물론 장기적인 전망을 긍정적으로 봤기 때문에 진출했지만, 현 상황만 놓고 따져보면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이들의 말은 허언이 아니다. 실제로 호치민시의 오성급 호텔 가운데에는 하루 숙박비가 400~500달러에 이르는 곳이 많다. 인프라가 부족한 탓이 크지만, 기본적으로 거품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공연한 한국가수 `비`의 공연 관람료가 베트남 사람 평균 월급을 크게 웃돌았고 앨범 등도 한국과 같은 가격에 팔린다. 현재 베트남은 넘치는 외국자본 탓으로 유동성이 크게 늘어나 물가상승률이 10%에 육박하는 상태다.

상황이 이런데도 호치민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베트남 전역은 경제가 살아나지 않아 일반인들의 목을 죄고 있다. 일단 제조업체가 너무 적다. 외국 자본이 열심히 투자할 곳을 찾고 있지만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 이것이 베트남의 현재 상황이다.

◇베트남 뒤덮은 두꺼운 버블

한국계 증권사들이 대거 입주해있는 호치민 페트로베트남타워 고층에서 내려다본 호치민은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인다. 개발해야할 땅이 곳곳에 널려있는 달콤한 지역인 것이다.
 
이 같은 매력은 각종 수치로도 확인된다. 2001년 이래로 매년 GDP가 7% 이상 성장하며 수출과 수입이 배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2000년 이후 매년 산업생산량이 14~16%씩 증가하고 있고 인구도 꾸준한 증가 추세다. 정부는 이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인프라 구축에 쏟아붓고 있다.
개발 붐이 베트남 전역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계 개발업체들은 기대했던만큼 쉽게 개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땅을 매수하려면 땅주인인 `인민`과 일일이 거래해야하는 구조, 부정부패, 취약한 지반 등이 약점으로 지목된다. 가장 큰 약점은 예상보다 비싼 땅값이다. 호치민의 노른자위 땅은 서울에 비해서도 결코 싸지 않다.
 
당초 베트남 정부는 외국계 자본에 우호적이었다. 지금도 물론 겉으로는 우호적이다. 그러나 개방 직후 돈이 없었을 때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정부가 외국계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알게 모르게 토지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외국계가 손쉽게 사업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설업이야 기술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외국계에 그나마 우호적이지만 `돈`에 기술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정부의 현금 보유고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기 때문에 금융업이 진출할 수 있는 사업 영역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평가했다. 
 
문구상 골든브릿지 법인장은 베트남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확신하기에는 정부의 지원도, 현지의 사정도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현지 파트너사들이 툭하면 말을 바꾸고 정부도 현지업체의 편만 들어준다. 외국계 중에서 한국 증권사들만 유독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이유도 그만큼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문 법인장은 "영국계인 WVB의 경우 베트남에 관심이 많지만 아직 직접 진출은 검토하지 않고 리서치 자료만 만들어 팔고 있다"며 "최근 국내 증권사들이 잇따라 사무소를 내고 베트남 진출을 선언하는데 솔직히 우려가 앞선다"고 털어놨다.

한국 증권사 가운데 베트남에 법인을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는 곳은 9개사에 달한다. 이 가운데 미래에셋증권이 12월 본 인가를 앞두고 있고 골든브릿지가 현지 증권사 인수를 거의 마무리짓고 있다. 나머지는 아직 초기 단계라는 것이 문 법인장의 판단이다.

문 법인장은 한국 증권사들의 해외시장 개척은 긍정적이지만, 시간을 두고 꼼꼼하게 점검한 뒤 진출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골든브릿지가 이미 한번 `물 먹은` 경력이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조언이다. 골든브릿지는 지난 8월 하이퐁증권 인수 계획을 전면 철회하고 올해 설립한 신규 증권사 C사를 인수할 계획이다.

문 법인장은 하이퐁증권을 인수하지 않기로 한 것과 관련해 `분식회계`를 주 이유로 꼽았다. 그는 "하이퐁증권은 고객 예탁금을 빼서 맘대로 사용하는 등 도덕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해당 증권사랑 잘 합의해보라`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기업들은 분식회계가 일상화돼 있다는 것이 문 법인장의 판단이다. 대부분의 국영기업들이 연 평균 15%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15% 정도는 성장해야 문책당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5% 넘게 성장하는 기업들도 튀지 않기 위해 흑자폭을 줄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일구 동양종금증권 호치민 사무소장은 "부동산을 개발하겠다고 돌아다니는 컨설팅사만 해도 수백개가 호치민을 기웃거리고 있다"며 "너무 단기적인 시각을 갖고 뛰어드는 것 같아 걱정이다"고 지적했다.

김한석 현대증권 사무소장 역시 "버블에 신경쓰지 않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특징 아니겠느냐"며 "시장 파이가 작아서 외국인들이 뛰어들지 않은 것인데 한국 증권사가 너무 적극적으로 밀고 들어온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베트남만한 곳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베트남이 매력적인 투자처가 확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버블이 우려된다고 멈칫하다간 정체 상태를 맞을 수 밖에 없다고도 했다.

김승환 한국운용 호치민사무소장은 "베트남은 당분간 고성장 모드를 이어갈 것"이라며 "지금이 버블이더라도 그 갭을 메울 수 있을만큼 베트남은 성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김승환 사무소장은 "한국에서도 베트남 투자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시작하면서부터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덤비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될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준비해 잘 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B나 PI보다는 주식매매나 IPO 사업에 집중하는 동양종금증권의 최일구 사무소장 역시 "솔직히 지금은 증시에서 살 종목이 마땅히 없지만 정부가 국영기업 상장을 빨리 진행하라고 압력을 넣는 상태"라며 "조만간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성문 미래에셋증권 베트남 법인장은 베트남이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인만큼 인프라부터 하나씩 하나씩 개발해나가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래에셋증권의 가장 큰 경쟁력인 `거대 자본`으로 신도시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미래에셋증권 베트남법인은 벌써 현지 은행 및 개발사와 함께 빈짠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나선 상황이다.

그는 "국가가 앞장서서 개발하는 중국에 비해 속도는 느리지만 베트남 역시 먹을 것이 많다"며 "일단은 인프라 투자사업에 참여해 버틸 자금을 모으고, 궁극적으로는 베트남 최고의 종합증권사로 육성해나갈 계획"이라고 자신했다.
 

 
* 협찬 :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대우증권, 한국투자증권, 교보증권, 메리츠증권, 하나대투증권, 키움증권,
굿모닝신한증권, 한화증권, 현대증권, 미래에셋증권, 대신증권, 동양종합금융증권,
증권선물거래소, 한국증권업협회, 증권예탁결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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