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환의 크레딧스토리)신용분석의 세가지 색깔(1)

  • 등록 2005-04-26 오전 11:00:00

    수정 2005-04-26 오전 11:00:00

[edaily] 회사채시장의 활기가 예사롭지 않다. 최근 수년간에 걸친 차입금 축소 조정의 여파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던 회사채시장이 3월 대규모 순발행을 기록하며 분위기를 일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회사채시장의 활기를 구조적인 변화로 확신하기는 아직 성급한 감이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한 회사채시장의 투자역량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적 변신의 중심에는 회사채시장의 신용분석 역량 제고가 있다. ◇‘따로 또 같이’ 가는 신용분석 3大 축 회사채 신용분석을 주업무로 하는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크게 3개의 분야를 기반으로 한다. 신용평가사와 자산운용부문(buy-side) 및 증권회사(sell-side)가 그것이다. 기업의 신용위험 분석이라는 기본적인 책무는 동일하지만 처한 입장에 따라 업무의 전개양식은 상당히 다르다. 신용평가사는 정통적인(orthodox) 입장에서 ‘시장가격에 초연’하게 ‘신용위험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임무다. 반면 직접 채권을 운용(trading)하는 자산운용부문에서는 신용위험이 더 이상 탁상공론이 아니다. 신용위험에 대한 판단은 매매로 이어져 시장가격을 움직이고, 다시 이것이 시가평가를 통해 펀드의 성과를 결정한다. 증권회사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는 거간꾼(broker)이다. 신용평가사 크레딧 애널리스트의 역사는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지만, 자산운용부문과 증권회사 크레딧 애널리스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 채권시가평가의 도입 이후부터다. 불과 몇 년 만에 주요 투자기관 대부분이 크레딧 애널리스트를 보유할 정도가 되었으니 가히 눈부신 성장이라 할 만 하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양적인 성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시스템의 조화다. 이들 3개 부문의 신용분석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덜 중요한 것은 없다. 각 부문의 균형 잡힌 성장과 유기적인 연계와 적절한 역할분할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회사채 신용분석은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 신용평가 정상화의 관건은 시장의 참여 최근 신용평가사들은 시장접근을 위해 전에 없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는 미미하다. 신용평가의 변신은 보통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일본 평가사는 S&P와 Moody’s에게 시장을 유린 당한 후에, 그리고 미국 평가사는 엔론사태로 존재이유가 의심 받는 상황에 이르자 ‘살아 남기’ 위해서 각고의 변신에 뛰어들었다. 우리 신용평가의 변신은 외환위기와 시가평가의 도입이 큰 모티브가 되었다. 그러나 신용평가 정상화의 관건은 ‘시장의 참여(또는 위협)’이다. 등급의 적정성에 대해 침묵하고 평가사간 차별성에 눈을 감는 투자자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돌부처 관중’일 뿐이다. 이 때 원론에 충실한 평가사가 얻는 것은 ‘깐깐하다’는 평판이고, 잃는 것은 ‘점유율’이다. 등급쇼핑은 발행사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신용평가의 변신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의 참여’가 부족해서라는 것이다. 신용평가의 모순을 투자자의 무관심으로 책임 전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신용평가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투자자의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물론 시장의 참여가 평가사 혼자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장의 관심과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우선은 신용평가사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평가사들이 시장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우선 동원하는 수단은 접촉 강화다. 하지만 만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평가사만이 가능하고(hard-to-imitate) 고객이 느끼는 가치(customer value)도 큰 서비스(=핵심역량)로 무장해야 한다. 어떤 것이 있을까? 바꾸어 말하면 지금까지 투자자들이 평가사로부터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한 부분이 어떤 것일까? ◇ 평가회사의 제1의 무기 `논리` 평가사의 서비스는 단지 신용등급뿐이 아니다. 신용등급에 이르는 과정이 오히려 중요하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신용등급이 결정되는 논리의 공유다. 평가사가 신용위험에 대한 판단기준을 선언하면 평가기준(rating criteria) 또는 평가정책(rating policy)이 된다. 신용평가의 영향력과 평가기준의 중요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가령 부채비율이 높아지거나 현금흐름이 나빠지면 신용도에 부정적이라는 정도는 이미 상식이다. 하지만 이정도의 상식도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숱한 시행착오와 평가행위를 통해 학습된 것이다. 더욱이 환경이 변하면 신용위험에 대한 판단도 달라진다. 고도성장기에는 부채비율이 그렇게 예민한 이슈가 아니었고, 최근 우리 시장에서 부각되고 있는 유동성리스크는 미국에서도 LTCM이나 엔론사태 이전에는 그렇게 비중이 있는 이슈가 아니었다. 카드위기도 4년 여에 걸친 초고속 성장으로 덩치가 커지면서 예전의 사소한 이슈가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버린 경우다. 평가기준을 살아있게 하는 것, 다시 말해 시장의 보편적인 기준(예를 들면 Moody’s way)으로 만들고 환경변화에 따라 적절히 기준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신용평가사가 시장에 제공하는 최고의 서비스다. 신용평가사의 시장에 대한 의무이자 영향력의 기반이다. 최근 신용평가사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평가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시장이 커 버린 것이다. 고식적이고 천편일률적인 평가이론으로는 시장의 지적욕구를 충족하지 못한다. 새로운 이슈에 대한 관심은 돈 냄새에 민감한 시장이 원론지향의 평가사를 능가한다. 지난해 시장을 특징지을 수 있는 현상이었던 스프레드 확대현상을 과연 시장의 과민반응으로만 폄하할 수 있겠는가? 시장은 시장과 함께 하는 시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신용평가를 원한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신용위험의 변화를 담아내려는 신용평가사의 진지한 고민이 담긴 신용평가의 논리(평가기준 또는 평가정책)를 갈구한다. ◇ 평가회사 제2의 무기 `사실(Fact)` 신용분석 업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의 하나가 업체의 자료제공 회피다. 특히 업체에게 불리한 정보는 여간해서 접근하기 어렵다. 그냥 공정공시를 핑계 대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욱이 최근 금융감독당국이 공시정보의 범위를 축소하는 바람에 투자자의 막막함은 더욱 커졌다.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데도 발행업체가 자료협조를 회피할 때 분석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연히 투자를 중단하거나(자산운용부문)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할(증권회사) 수 있을까? 구체적인 논거 없이 막연한 추론만으로 의심을 내세우는 것은 결국 분석자의 입지를 좁힌다. 그래서 많은 경우 적당히 핑계거리를 찾아 대충 무시하고 지나간다. 신용위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신용평가사의 입장은 다르다. 공정공시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신용등급을 매개로 보다 상세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물론 기업비밀의 보호를 전제로 입수한 정보를 투자자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가치판단은 등급결정 논리로 보고서에 담겨야 한다. 일종의 암묵적인 역할 분담이다. 가려운 부분을 평가사가 긁어주는데 감동하지 않을 투자자가 있을까? 현실로 돌아오자. 신용평가사는 시장의 정보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그림을 그린다. 시장이 모르는 것은 평가사도 모르고, 알아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왜? 투자자보다는 발행업체의 입김이 세기 때문이다. 투자자의 요구를 따르면 평가업체가 줄고, 바로 그 이유로 투자자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리게 된다. 악순환이 시작되면 끝이 없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평가사도 노력해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평가사에 대한 접근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행동하는 투자자만이 제대로 된 신용평가를 가질 수 있다. (칼럼이 길어서 1,2편으로 나누었습니다. 2편은 자산운용부문과 증권회사의 신용분석에 대한 것입니다.) 윤영환/굿모닝신한증권 기업분석부 연구위원/Credit analy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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