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이 유조선 도면과 모래벌판 사진을 보시오. 훨씬 더 좋은 배를 이 모래벌판에 공장을 지어 만들어주겠소. 내 배를 사주시려오?"
유조선 도면과 황량한 벌판 사진을 들고 몇십만톤 유조선을 만들테니 배를 사라고 생떼를 쓰는 사람이 있다. 어이없는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제안을 듣고 선뜻 "그럽시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잘 알려진대로 정주영 현대 회장이 1970년 현대중공업을 창립할 무렵의 일화다. 그리스 선박업계를 오나시스와 양분했던 선박왕 리바노스는 당시 정 회장에게 선뜻 26만톤급 유조선을 2척이나 발주해줬다.
이번주 Credit Research 대상기업은 현대중공업이다. 세계 최대의 선박건조능력을 바탕으로 조선, 해양구조물, 플랜트 등 다양한 사업군을 보유한 회사.
현대중공업은 2000년 계열사 구조조정 관련 유가증권 처분손실이 대거 발생한 후 세계경기 침체에 따른 조선업계 불황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지난해에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하이닉스 문제까지 겹쳐 고전을 면치못했다.
2000년 상반기까지만해도 신용등급 A를 받았으나 2000년7월 BBB+로 두 단계 떨어졌고 이후 A-까지 복귀한 상태. 현대중공업이 처한 현 상황을 자세히 분석한 후 등급상향 가능성을 점검해본다.
◆현대중공업 : 회사채 A-, 기업어음 A2- (한국신용정보, 한국기업평가)
◇세계최대의 조선업체..가격경쟁력 "따라올 자 없다"
현대중공업은 건조능력과 실적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최대의 조선업체다. 설립 후 중공업관련 계열사의 흡수합병을 통해 조선, 해양구조물, 플랜트 등 다양한 사업군을 보유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효과가 큰 데다 전 선종에 걸쳐 건조경험도 매우 풍부하다.
조선업의 경우 선박가격의 10~15%를 엔진이 차치하는데 현대중공업은 세계최대의 선박용 엔진 제작업체이기도 하다. 다양한 종류의 선박 건조경험, 핵심기자재 자체조달 등을 배경으로 조선부문 경쟁력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여기에 설계 및 건조현장 인력의 숙련도 및 엔지니어링도 우수하며 현대미포조선과 연계한 시너지 창출능력도 크다.
세계 1위의 시장지위, 우수한 영업수익성, 원활한 현금흐름 등에서 현대중공업은 국내 경쟁업체는 물론 일본 업체들도 압도할만한 수준이라는 것이 시장관계자들의 평가다.
*현대중공업의 주요 재무제표(자료:동양증권)
◇걸림돌 계열리스크..하이닉스 "골머리"
현대중공업은 세계경제 침체에 따른 수주량감소 등으로 상당한 고전을 겪었다. 경기침체에 따른 이익감소는 불가항력이지만 "하이닉스"를 비롯한 계열사 문제는 현대중공업의 "원죄"처럼 회사의 목줄을 죄어왔다.
하이닉스반도체와 관련한 현대중공업의 문제는 HSMA(Hynix Semiconductor Manufacturing America Inc. 하이닉스반도체 미국현지법인)과의 악연에서 시작된다. HSMA는 체이스맨해턴 은행 등으로부터 97년 반도체웨이퍼 공장(美 유진공장 Eugine Fab) 설립대금으로 약11억5000만달러를 차입했다. 당시 하이닉스는 HSMA가 생산한 웨이퍼전량을 의무적으로 구매하는 웨이퍼구매계약(Off-take Agreement)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현대종합상사 등 현대그룹 계열 3개사는 다시 웨이퍼구매계약의 이행을 보증하는 그룹지원약정(Group Support Agreement)을 체결했다. 웨이퍼구매계약과 그룹지원약정이 체이스맨해턴에 담보로 제공된 셈이다.
지난해 7월 유진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현대중공업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2달만에 터진 911테러 사태와 반도체가격 급락으로 유진공장은 문을 닫아야할 위기까지 몰렸다.
◇잠재부담이지만 감당 가능하다
현재 HSMA 는 차입금 11억5000만 달러 중 약 1억달러 정도를 갚은 상태다. 만일 유진공장이 완전히 문을 닫는다면 남아있는 10억5000만달러가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현대 계열사가 갚아줘야 할 채무로 등장하는 것.
현대투신 이성재 애널리스트는 "유진공장의 자산가치가 7억달러 이상이고 3개 회사가 나눠서 분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중공업이 실질적으로 부담해야할 금액은 1억1000만달러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마이크론과의 인수협상, 반도체가격 회복세 등에 따라 유진공장이 문을 닫을 위험성이 대폭 줄어들었다"며 "보증에 관해 현대중공업이 안고있는 하이닉스 리스크는 현저히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잠재적 불안요인임은 분명하지만 위험요인이 대폭 줄어들었고 이 문제가 오랜동안 알려진 탓에 추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
현대중공업 측도 "유진공장은 올해 1월15일자로 정상 가동에 들어갔다"며 "마이크론 매각협상 대상에 이 공장이 포함돼있는 등 앞으로 현대중공업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