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미국 매장 구석에 먼지 뒤집어쓴 제품에 충격 받아
일본 고문들과 회의 직후 프랑크푸르트서 작심 발언
90년대 초반 신경영 선언 통해 글로벌 초일류기업 초석
  • 등록 2020-10-25 오후 12:16:25

    수정 2020-10-25 오후 12:16:25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3년 6월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발언은 당시 이건희 회장이 느끼던 위기 의식이 어느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삼성은 이 회장이 주창한 신경영을 토대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당시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이 회장의 진단이었다.

이때까지 삼성은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일선 경영진의 관심은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가에 집중돼 있었다. 각 부문은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해 부가가치, 시너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들을 소홀히 했다. 이처럼 1990년대 초반 삼성은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 채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다.

이 회장은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질타했다.

실제로 삼성이 만든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뿐,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 회장은 이런 수준으로는 세계 초일류기업은 고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조차 없겠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마침내 이 회장은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했다. 삼성이 잘한다고 자부하며 만든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현지 매장에서 삼성 제품은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아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었다. 임원들과 함께 이를 둘러보며 이 회장은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 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통탄했다.

이 회장은 이대로 있으면 삼류, 사류로 전락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체 절명의 위기감을 전 임직원이 공감하고 대전환의 길을 선택할 것을 바랐다. 삼성 관계자는 “이는 양(量)이냐 질(質)이냐의 선택이었고, 국내 제일에 머물 것인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 초일류로 도약할 것인가의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1993년 6월 4일 이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경영 현장을 지도해 온 일본인 고문들과 삼성이 지닌 문제점들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이 회장은 디자인 수준을 어떻게 올려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디자인부서를 지도했던 후쿠다 다미오 고문은 삼성전자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그는 일류상품은 디자인만으로는 안 되고 상품기획과 생산기술 등이 일체화돼야 하는데, 삼성은 상품기획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개발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실 이 보고서에서 거론되고 있는 사항들은 그 동안 이 회장이 숱하게 지적하며 고치기를 강조해온 고질적 업무관행이었다. 이 회장은 도쿄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기내에 동승했던 사장단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논의하게 했다. 그 논의는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이어졌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이 회장은 세탁기 조립 라인에서 직원들이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 규격이 맞지 않아 닫히지 않자 즉석에서 덮개를 칼로 깎아 내고 조립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품질고발 사내방송 프로그램 비디오테이프를 받아 보고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1993년 6월 7일 마침내 이 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아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며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주요 임원들은 프랑크푸르트로 긴급 소집됐다. 이때부터 신경영을 전파하기 위한 회의와 교육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그해 6월 24일까지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로잔, 영국 런던에서 이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와 특강이 이어졌다. 7월 4일부터는 일본에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로 옮겨가며 8월 4일까지 회의와 특강이 계속됐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이렇게 2개월에 걸친 긴 여정을 통해 삼성의 신경영 철학은 세계화의 현장에서 제시되고 확산됐다.

당시 이 회장 만난 임직원은 1800여명, 그들과 나눈 대화 시간은 350시간에 달했으며, 이를 풀어 쓰면 A4 용지 8500매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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