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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들의 면면은 새롭지 않은 내용이다. 그러나 그 강도는 갈수록 세를 불리면서 바닥의 실체를 더욱 가늠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분명 바닥 어딘가에 와 있는 것이 맞지만, 당장의 심리적 공황 상태를 메울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 없다.
내년까지 본다면 점점 심각한 상황에 빠지고 있는 경기후퇴(recession)와 맞물려 증시 역시 저점을 낮춰갈 때마다 바닥론만 무성하겠지만 불확실성 해소 없이는 이 또한 대책없이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 美 증시, 2003년 봄 수준 회귀..저항 끝 다시 후퇴
매번 위태위태했던 뉴욕 증시가 결국 다시 무릎을 꿇었다. 19일(현지시간) 다우존스 지수와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500 지수, 나스닥 지수 모두 5년 반 전인 지난 2003년 3~4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S&P500 지수만 해도 지난 2007년10월 이후 48%가, 올해 들어서는 45%나 빠졌다. 지난 1931년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뉴욕 증시가 이미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새로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더 주목할 점은 다우지수 기준으로 8000선에서 구축하려 애쓴 방어선이 또 다시 무너진 것이다.
한 동안 지수가 급락할 때마다 일정 선에서는 저가매수가 나타나 줬다. 그러나 변동성이 여전한 가운데 지수가 저점을 낮춰가는 흐름이 지속되고 있어 20일 다시 저가매수가 확인되더라도 바닥 확인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하워드 실버블랫 S&P 애널리스트는 "모든 사람들이 주식 시장에서 현금을 회수하며 한발 비껴서고 있다"며 "시장에서 하루종일 들린 것은 `도대체 어디로 숨어야 하냐`는 아우성이었다"고 말했다.
◇ 악재들, 갈수록 또렷..저점 테스트 내년까지 지속
주가 급락이 야속하지만 사실 빠질 이유는 충분했다. 전혀 새로운 악재가 돌출된 것은 아니지만 기존 악재들은 형상이 갈수록 뚜렷해지면서 증시 역시 압박하고 있다.
추세대로라면 증시 역시 저점 테스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시장이 선행지수 역할을 하지만 현재로서는 향후 몇 개월안에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무색하기 때문이다.
몇 주 사이 기업 실적전망 역시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톰슨파이낸셜에 따르면 내년 S&P500 기업들의 이익성장 추정치는 지난 10월초보다 22%나 밑돌았다.
전문가들도 당장 내년까지는 증시의 추가 하락을 각오하는 분위기다. 물가 하락과 실업률 증가, 자동차 산업 구제 등 악재가 산적해 있고, 내년까지 경기후퇴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도 최근 몇 주 사이 기정사실화됐다.
피터 태너스 릭스인베스트먼트어드바이저리 회장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경기후퇴가 얼마나 깊을 지, 그리고 어떻게 빠져나올 지 확인되기 전까지 주식 시장의 무력감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내년 증시는 올해 저점 수준을 더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 터틀웰스매니지먼트의 매튜 터틀의 경우 다우지수가 지난 2002년 10월 저점인 7200선까지 밀릴 것으로 보고 있다.
◇ 불확실성 해소없인 바닥론에 그칠 것
다우지수가 1만1000선에서 1만선, 9000선과 8000선을 거칠 때마다 바닥론 역시 득세했다. 주가는 분명 상당히 싸졌고, 장기적으로 바닥 어딘가에 와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는 상황.
그러나 현재 중요한 것은 장기 바닥인식을 압도하고 있는 단기 불확실성이다. 단순히 GM의 경우만 봐도 시장이 가장 혐오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GM이 전복되느냐 마느냐는 확실히 주식 시장에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투자의 대가들일지라도 단기 흐름 전망에 대해서는 두 손을 든다. 최근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렌 버핏과 제레미 그랜썸 GMO 회장 모두 장기적으로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고 밝혔지만 시장이 얼마나 더 악화될 지를 예견하지 못했다.
장기적으로는 질적으로 우수한 주식을 사들여야 하는 시기임에 분명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방어적인 자세가 조언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상황도 이 때문이다.
리차드 번스타인 메릴린치 스트레티지스트는 "단순히 보면 싼 밸류에이션 자체가 현재의 나쁜 상황의 고통을 반영한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만 해도 약세장 끝에 11월초부터 연말까지는 10%나 오르는 일종의 랠리가 나타났지만, 역사적 저점을 맞고 있는 올해는 예외일 것으로 보인다.
◇ 바닥 징후 확인할 지표 범주 "좀더 넓혀라"
그동안 바닥을 확인할 지표로 `날개 돋힌 듯한` 약세장과 극도의 저평가 상태, 심리적인 항복과 체념 등이 애용돼 왔지만 결국엔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바닥확인 지표의 범주도 좀 더 현명하게 넓혀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른다. 바닥을 찾으려는 사투를 반증하듯 측정 기준들도 상당히 다채롭다.
메릴린치의 번스타인은 월가 전문가들의 포트폴리오 배분 추천비중을 주시하라고 말했다. 20년간 추이를 추적한 결과 지난 2002년과 2004년처럼 주식 배분이 60~65%나 추천될 때 향후 주가 약세의 신호가 됐고, 1997년처럼 절반 정도만을 주식에 배분했을 때는 강세 신호가 됐다는 설명이다.
번스타인은 "지난해 60%대 중반에 달했던 주식 자산배분 추이가 2주전에는 58%선까지 떨어졌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진짜` 비관론에서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다.
트림탭스인베스트먼트리서치의 찰스 비더만 사장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 주가가 바닥이라는 확신이 커지면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들어간 것을 상기시키며 "지난 2002년에도 버블 붕괴 이후 이같은 흐름이 여름부터 나타났지만, 현재로서는 지난해 10~11월 1일평균 36억달러에 달했던 자사주 매입규모가 4000만달러까지 급감해 있다"고 말했다.
시킹알파의 제너디 파벨의 경우 에너지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과 주식가치의 장부가(자산-부채) 근접, 실업률 수준의 안정, 시장지표의 복합적 변화 등을 들기도 했다.
시장지표의 복합적 변화의 경우, 과거 정보기술(IT) 버블을 형성했던 기업들이 나스닥 구성 기업에서 제외되고, 구글과 같은 건전한 새 기업이 등장했을 때 나스닥 시장이 비로소 회복됐다는 것을 상기하라며 지수구성 종목의 재균형 역시 또다른 지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