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극중 오연상 교수가 근무하던 그곳은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이다. 중대병원, 용산병원으로 불렸던 이곳은 사실 일제 강점기부터 존재해 온 병원이자 강제징용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병원임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1900년대 초 일제는 자원의 효율적인 수탈과 전쟁물자의 원활한 보급을 위해 조선에 철도망을 구축한다. 이 때 당시 남대문과도 가깝고 한강과도 가까운 용산이 최적의 철도기지 입지로 낙점됐고 현 용산역 부지 인근에 대규모 철도기지가 세워진다.
이 철도기지의 신속한 건설을 위해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로 징용된다. 일제강점기의 대부분의 징용 현장이 그러했듯 열악한 환경과 터무니 없는 임금, 그리고 부실한 배식은 수많은 조선인들을 병들게 했다. ‘사람’이기 이전에 ‘노동단위’였던 당시의 징용 노동자들은 아플 권리조차도 없었는데, 일제는 병들고 다친 노동자들을 신속하게 철도기지 건설 현장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에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부지에 병원을 짓는다.
1928년 용산 철도병원은 ‘철도국 서울진료소’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이곳에서 치료받는 이들도, 치료하는 의사들도, 하나의 부품이자 이를 수리하는 자로서 끔찍한 시간을 보낸 셈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철도국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 서울진료소는 철도병원으로 간판을 바꾸어 걸었다. 철도와 병원이라는 이곳의 근간은 잊혀지지 않는 역사처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 고통이 기록된 건축임에도 그 건축의 미적, 문화적 가치는 높게 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조선총독부가 그러했고 구 서울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용산 철도병원 또한 유려한 적벽돌의 곡선 벽체와 세장한 창문, 절제된 몰딩(moulding, 벽 상부에 띠처럼 댄 장식)과 아치형 캐노피 등 서양 고전양식과 근대건축의 복합적인 특성을 한데 품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또 개보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건물이라는 점도 가치를 더한다. 이에 200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식민지배, 강제징용, 1987년의 근대사, 그리고 ‘용산시대’라 불렸던 국제업무단지개발까지 우리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준 건축물을 놓고 펼쳐진 욕망의 장(場)은 어제쯤 거두어질까. 엄격한 규제를 통해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용산 철도병원은 등록문화재다. 등록문화재는 너무 엄격한 기존 문화재 제도를 보완해 문화재를 보존하는 방법론을 다양화 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외관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부 수리를 허용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
- 현(現) Architects H2L 대표
- 현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겸임교수
- 건축사/건축학박사/미국 친환경기술사(LEED 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