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중국이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미국 제품 구매) 정책에 맞불을 놨다. 자국 국영 기업 및 병원에 의료기기 등 제품을 중국산으로 쓰라는 지침을 내리면서 미중 양국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 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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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미국 관료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 재정부와 산업정보기술부(MIIT)가 지난 5월14일 ‘수입제품 정부 조달 감사 지침’을 발행했다고 밝혔다. 해당 문서에는 중국 정부가 X선 기계, 자기공명영상(MRI) 장비 등 수백 개 품목의 국산(중국산) 제품 사용률을 100%까지 끌어올리라고 요구한 내용이 담겼다.
해당 문건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며, 중국 정부와 MIIT도 문건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중 무역정책을 검토 중인 미 무역대표부(USTR) 또한 이 문건이 미중 무역협정을 위반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중국 병원 및 기타 국영 기업에 발송된 이 문서는 315개 품목의 국산화율을 25%에서 100%로 끌어올리도록 지시하고 있다. 해당 품목에는 △의료 장비 △지상 레이더 장비 △시험 기계 △광학 장비 △해양, 지질 및 지구 물리학 장비 등이 해당된다.
‘바이 아메리칸’은 6000억달러(약 690조원) 규모에 달하는 미 연방 정부의 제품 구매·조달 시장에서 미국산 비율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집권 첫 주 동안 연방 정부의 막대한 구매력을 활용해 미국 제조업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바이 아메리칸’ 행정 명령에 서명했고 지난주에는 정부가 조달한 상품의 국산화 비중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발표했다.
미국 무역 전문가들은 중국의 자국 생산품 사용 규칙이 공개되지 않은 데다 정부뿐 아니라 중국 국유 기업, 병원 등을 포함하고 있어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 정책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중국은 지난해 약 1240억달러(약 143조원)의 상품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했는데, 그 중 상당수는 교육, 보건, 교통, 농업, 에너지 부문을 지배하는 국유기업이나 정부 관련 기업이 구입했다. 피치솔루션즈 데이터에 따르면 존슨앤드존슨, 제네럴 일렉트릭(GE), 애벗 등의 기업들이 2018년 대중국 의료기기 수출액은 45억달러(약 5조2000억원)였다.
특히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지침을 내린 것이 아니라 중국 국영 회사 및 협회 사이에서만 비공개로 전달되고 있어 중국 정부가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해당 지침은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지침의 존재를 부인할 수도 있고, 단순한 가이드 라인 수준이었다고 해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신은 새로운 수입 제한이 미중 무역협정 준수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중 양국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더믹)이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 1월 1단계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2년간 최소 2000억달러(약 230조원) 이상의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