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줍게 고개 내민 가을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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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청태산 숲체원’
  • 등록 2007-08-23 오전 11:05:00

    수정 2007-08-23 오전 11:05:00

[조선일보 제공] 고산지대에 오르니 귀가 먹먹하게 느껴진다.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는다. 이 곳은 해발 800~1000m의 산자락에 위치한 숲, 청태산(靑太山) 숲체원.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방림면 경계에 있는 숲 체험 시설이다. 해발고도가 높아 기온이 낮다 보니 8월이면 가을이 오고, 봄에도 설경을 볼 수 있다는 이 곳에서 미리 가을 야생화를 만나고 왔다. 
 
▲ 청태산에 조성된 나무경사길 "휠체어 테크로드". 노약자도 산 정상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미리 만나는 가을 꽃

9월에나 핀다는 꽃이 벌써 한창이다. 꽃잎을 떨구고 열매를 맺는 야생화도 있다.

숲체원의 입구에서 ‘야생화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 모싯대가 기다리고 있다. 모싯대는 9월에 피는 초롱 모양의 야생화. 흔히 해발 700~800m 높이의 고산지대에서 피는데, 꽃망울이 터지면 꼭 부끄럼을 타는 소녀처럼 고개를 떨군다. 그래서 높은 산에 올라 모싯대를 바라보면 고개를 숙인 뒷모습만 보인다.

▲ 밑들이메뚜기
동자꽃도 수줍음이 많기로 치면 만만치 않다. 동자승(童子僧)이 한 겨울에 주지스님을 기다리다가 추위에 동사(凍死)한 뒤, 무덤가에 꽃으로 다시 환생했다는 전설을 지닌 꽃이다. 해사한 주황색 얼굴을 감춘 채 땅만 바라보고 있다. 뒤에서 바라보면 모싯대와 마찬가지로 꽃의 목덜미만 보인다. 반면, 큰 도둑놈의 갈고리는 악착같은 매력이 있는 풀. 벌써 꽃은 지고 열매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콩 꼬투리처럼 생긴 열매에 붙은 잔 가시가 있어, 사람의 옷이나 짐승의 털에 잘 달라붙는다. 멀리 도망쳐서라도 살아남기 위한 ‘도둑놈’의 생존전략이라 하겠다.

참나물은 지금 청태산 산기슭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가을 야생화. 이름처럼 먹을 수 있다. 잎을 비비면 향긋한 내가 난다. 여러 개의 우산이 달린 모양으로, 자잘한 하얀꽃들이 한데 뭉쳐 피어난다. 참취는 ‘취나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식물이다. 잎에서 나는 향이 워낙 달콤한 탓에 껄끄러운 털을 온 몸에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손을 잘 탄다. 10월까지 피는 가을 꽃이다.

▲ 팔랑나비
늦가을에나 피는 자줏빛의 바디나물도 청태산에선 이미 제철을 만났다. 뿌리가 약재로 쓰였던 식물. 흰색으로 피는 꽃도 있는데, ‘흰꽃바디나물’이라고 불린다.

노루오줌과 배초향은 벌써 지기 시작했다. 노루오줌은 긴 원뿔모양의 꽃이 한 쪽으로 꼬부라져, 농악대들이 쓰던 고깔 모양이다. 줄기를 흔들면 오줌냄새가 난다는 속설이 있긴 한데, 실제로 맡아봤다는 이는 별로 없다. 배초향은 여러 송이의 잔 꽃이 모두 각자 다른 방향으로 피어 있다. 민트처럼 향기가 독특해 과거엔 생선 비린내를 없애는데 쓰였단다.

숨어있는 단풍취도 찾아보자. 깊은 산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 이 식물은 밤 하늘 위에서 온 몸으로 피고 지는 불꽃을 닮았다. 흩어지는 불꽃놀이를 연상하는 꽃이 또 있다. 바로 산비장이. 줄기와 가지 끝에 달린 대롱 위에서 보랏빛 꽃잎이 폭발하듯 피어난다. 비슷하게 생긴 고리엉겅퀴도 청태산 중턱 곳곳에 있다. 흔히 ‘곤드레’라 불리는 식물의 꽃으로, 특유의 연한 향기가 가을 정취를 자극한다.


이끼와 고사리

청태산은 습지가 많은 산이다. 이끼와 고사리를 비롯한 각종 양치식물이 지천에 널려 있다. 에서 숲 해설을 도와준 김영희씨의 설명이 재미있다. 김씨는 “예전에 태조 이성계가 이 곳에서 푸른 이끼가 깔린 커다란 바위를 발견하고 ‘크고 푸른 산’이란 뜻의 ‘청태산’이란 이름을 붙여줬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일부 학자들은 바위에 깔린 이끼에 주목해서, ‘청태산(靑太山)’의 ‘태(太)’를 ‘이끼태(苔)’로 고쳐서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곳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끼는 털깃털이끼. 솔방울이 여러 개 달린 모양으로, 카펫처럼 숲에 넓게 퍼져 자라는 게 특징이다.

고사리의 종류도 다양하다. 응달고사리는 잎의 가장자리가 다른 고사리보다 약간 넓고 밋밋해 보인다. 십자고사리는 첫째 잎조각이 길게 발달해 십자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 잎이 유난히 작은 참새발고사리도 찾아볼 것. 다른 고사리보다 섬세하게 생겨서 비교적 구분하기 쉽다.

사라져가는 습지식물 중의 하나인 도깨비 부채도 있다. 크고 둥근 잎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야생초이지만, 최근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돼 다른 곳에선 쉽게 볼 수 없다. ‘고사리원’에 있는 속새도 빼놓지 말자. 바늘을 여러 개 꽂아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요맘때가 되면 끝에 큰 혹처럼 생긴 포자가 매달렸다가 바람에 날려 번식을 시작한다.


숲체원에서 쉬어가기

9월 5일부터 모든 탐방로를 개방한다. 현재는 공사를 마친 1~3번 탐방로에서 제한적으로 손님을 받고 있다. 숲을 바로 앞에 두고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숙박시설도 마련돼 있다. 가족이나 개인, 단체손님 모두 받는다. 15평짜리 통나무방이 성수기엔 하룻밤에 5만5000원, 비수기엔 4만5000원이다. 20명 이상의 단체손님의 경우, 미리 신청하면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숲을 둘러볼 수도 있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둔내IC로 들어서서 둔내 방면으로 1㎞를 올라온다. 면 소재지에 들어서기 전 나오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2㎞정도 가면 다시 사거리가 나온다. 직진해서 6㎞정도 달리면 왼쪽에 삽교 쉼터가 있다. 오른쪽 고속도로 건너편으로 간다. 둔내 유스호스텔 쪽으로 직진하면 오른쪽에 ‘청태산 자연휴양림’이 나오고, 이를 지나쳐서 영동1터널 쪽으로 올라오면 ‘숲체원’이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간판이 보인다. 문의 (033)340-6300, 숲체원 홈페이지 www.soop2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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