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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나정상(가명·21·여)씨는 14일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서울시청 앞 광장을 찾았다. 성(性)소수자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나씨의 어머니는 “처음에 (내 딸이) ‘고백’을 했을 때 내 딸이 왜 이렇게 됐나하고 걱정이 앞섰다”며 “하지만 잘못된 것은 성소수자인 내 딸이 아니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타인들이더라. 흔한 축제에 놀러가듯 오늘도 즐기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나씨 모녀는 제일 먼저 서울광장 행사장 한 쪽에 위치한 ‘성소수자 부모모임’ 부스를 찾아 향후 정기모임을 위한 참가 신청과 함께 후원을 약속했다. 성 중립 화장실 개설을 위한 서명란에도 나란히 이름을 적었다.
“어디에나 성소수자는 있다”…수만 인파 몰려
지난 2000년 50여 명의 참여자로 시작한 퀴어(Queer)축제는 올해로 19회를 맞이했다. 관심과 참여도 매년 높아지면서 지난해에는 5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주최 측은 올해 더욱 많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날 퍼레이드 일정까지 마친 후 누적 추산 인원을 밝힐 예정이다.
행사 참여부스도 늘어 국가인권위원회와 대학성소주자모임연대(QUV), 주한 미국대사관과 유럽연합(EU)대표부 등 이날 105개의 부스가 참여했다. 올해로 2회째 참여한 인권위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세상 어디에나 무지개는 뜹니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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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축제 행사장은 내외국인 성소수자(LGBTQI: Lesbian·Gay·Bisexual·Transgender·Queer·Intersex)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관광객들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서울광장의 공식 최대수용인원은 1만 명이다.
이날 오후 5시쯤부터 서울광장을 출발해 종로와 명동 일대 구간 4km를 행진하는 ‘서울퀴어퍼레이드’ 참여를 위해 ‘할리퀸’과 같은 각종 영화 혹은 만화 캐릭터로 코스프레 하거나 독특한 의상과 가면을 착용한 참가자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인어공주’ 차림을 한 강모(30·남)씨는 “퍼레이드 때 선두에 서서 플래시 세례를 많이 받고 싶다”면서 “당당하게 즐기는 모습을 널리 보여주면서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한 (성소수자)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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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범석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학내 반대 목소리는 여전히 있지만, 앞서 중앙운영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퍼레이드 참여가 결정돼 총학생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명진(39·남)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지난 긴 시간동안 성소수자들은 ‘지워진 존재’로 살아왔다”며 “성소수자들도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알리는 ‘사회 가시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퀴어축제와 퍼레이드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단체 등 동성애 반대 맞불 집회도
한편 이날 서울광장 주변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맞불’ 집회들도 이어졌다. 경찰은 무력 충돌 등의 사태에 대비해 서울광장 둘레에 폴리스라인 펜스로 설치하고 양측의 접촉을 차단했다. 경찰은 이날 약 15개 중대(1000여 명) 경력을 배치했으며 서울시 역시 소속 공무원 100여 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이날 퀴어축제 공식 시작 시간인 오전 11시보다 이른 시각 한 보수단체는 서울광장 바로 앞 도로에서 단체 한복 차림으로 북을 치며 ‘동성애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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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측 집회 공간 사이를 지나던 시민 박모(41)씨는 “동성애를 제도권 안으로 인정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며 “동성애를 반대하는 게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 60대 남성은 행사장에서 성소수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지려고 하자 경찰의 제지를 받고 퇴장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부정적 시선에 대해 강 위원장은 “누구나 의지와 신념이 있지만 이를 타인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 안 된다”며 “내 자신의 생각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다른 이들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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