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문제 있는 노조에 ‘노조 아님’ 통보 못 하게 된다

고용부,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법외노조 논란’ 시행령 9조2항…‘노조 아님 통보’ 문구 삭제
노조 결격사유 발생해도 시정 요구만…제재 수단은 없어
고용부 “노조 제재 시행령에 담을 내용 아냐…입법 필요”
  • 등록 2021-03-17 오전 9:00:00

    수정 2021-03-17 오전 9:00:00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앞으로 기존에 설립된 노동조합에 결격사유가 발생해도 노조가 아니라는 통보를 할 수 없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을 위반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해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개정 노조법의 시행령 개정안에 담긴 내용으로 문제가 발생한 노조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대법원의 법외노조 통보 무효 판결과 ILO 협약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며 노조 제재 수단은 새로운 입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관계자들은 지난해 11월 25일 전북 전주시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앞에서 ‘노동개악 저지 및 전태일 3법 쟁취를 위한 총파업·총력투쟁 전국동시다발 전북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문제 있는 노조에도 ‘노조 아님’ 통보 못 한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하위법령의 개정안 입법예고를 진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9일 국회를 통과해 오는 7월 6일 시행 예정인 노조법의 필요한 규정들을 정비하기 위해 마련됐다.

앞서 개정된 노조법은 해고자·실업자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에 비준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시행령은 개정안 중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의 정비에 이목이 쏠렸다.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은 이미 설립된 노조가 사용자 이익만 대변하는 이른바 ‘어용노조’인 경우, 노조에 노동자가 아닌 자가 가입됐거나 정치운동 주목적으로 하는 등 설립신고서 반려 사유가 발생했는데도 행정관청의 시정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노조 아님’ 통보를 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조항으로 인해 해고자의 노조 활동 등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법적인 노조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시행령 9조 2항의 정비가 불가피해졌다. 대법원의 요지는 노조가 아니라는 통보는 헌법상 노동 3권을 제약하고 노조법에도 근거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해당 판결 이후 노동계에서는 시행령 9조 2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요구했다.

이에 고용부는 시행령 개정안에서 9조 2항 전체를 삭제하지 않고, ‘노조 아님’ 통보의 단서가 되는 일부 문구를 지우기로 했다. 이에 노조의 설립신고서 반려사유가 발생하면 행정관청이 30일 동안 시정을 요구할 수 있지만, 더이상 노조가 아니라고 통보하지 못 하게 된다. 즉, 앞으로 설립된 노조의 결격 사유가 발생해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노조 아님’ 통보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며 “행정관청의 시정요구 후에도 시정이 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추가 제재 수단은 없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이어 “설립된 노조의 결격 사유가 생기는 경우에 대한 제재는 현재로선 시행령에 담기엔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입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이유로 경영계에선 결격 사유가 있는 노조에 대한 직권취소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조 아님’ 통보가 삭제되면 반려 사유가 발생해도 노조 설립신고 접수를 취소할 수 없는 입법적 불비 상황이 초래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총은 “설립신고서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 행정관청에서 30일의 기간을 정해 시정을 요구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노동위원회 의결을 통해 설립신고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설립된 노조를 없애는 방법은 현재 법 체계에선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ILO 비준을 위해 노조법이 통과된 상황에서 노동위원회 의결로 설립신고를 취소하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현제 법 체계에선 마땅한 해결책이 없고 설립신고제도 자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설립된 노조를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시정 요구만으로 실효성이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조가 사실 자신들의 결격 사유를 모르는 경우도 있어 문제를 인지하도록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시정할 기회도 준다”며 “대법 판결도 시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이 아니라 시정하지 않았다고 노조가 아니라고 통보하는 게 위법이라고 한 것”이라고 전했다.

자료=고용노동부 제공
타임오프 한도는 종사자 조합원만 고려

또 이번 시행령에는 근로자대표의 노조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을 임금손실 없이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는 이른바 ‘근로시간면제’의 한도를 정할 때 전체 조합원이 아닌 종사자 조합원수를 고려하도록 했다. 이는 경영계의 요구사항으로 개정된 노조법이 해고자 등 비종사자 조합원과 종사자 조합원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한도 결정체계도 바뀌어야 한다는 이유다. 또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운영 권한을 고용노동부장관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변경된다.

아울러 단체교섭 제도 운영과정에서 현장에서 제기된 제도 보완사항을 반영하는 등 일부 노사관계 제도 개선도 병행한다. 교섭대표노조 결정할 때 이의제기 사유도 추가하고, 사용자 동의로 개별교섭이 있었던 날부터 1년 동안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못하면 새롭게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도 진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고용부는 이날부터 내달 26일까지 입법예고 기간 동안 노사 등 이해관계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개정 노조법 내용이 현장에 신속히 안착할 수 있도록 차질 없는 하위법령 개정할 것”이라며 “설명자료도 배포해 개정 노조법 시행 전까지 현장 교육, 노사 설명회 등을 집중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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