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대다수 보험사가 당국 개선안에 포함된 무해지 보험 해지율 가정의 가이드라인(실무 표준안)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고 있어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보험사는 당국 방안을 그대로 따르면 지급 여력 부족 사태까지 일으킬 수 있어 보험사 경영의 ‘존폐’가 달렸다고 주장한다. 무해지 보험이란 납입 기간(통상 20~30년) 중 해지하면 환급금이 없고 납입 기간 후 해지하면 50% 정도만 돌려주는 상품이다. 환급금이 적은 대신 보험료가 일반 상품과 비교해 절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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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17 제도에선 보험사의 재무 성과가 ‘계리적 가정’에 따라 민감하게 달라진다. 금융 당국은 도입 초기 이런 가정에 대해 기본 원칙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보험사 자율에 맡겨왔다. 하지만 보험사 이익과 실적이 급격히 좋아지자 논란이 일며 지난 5월 보험개혁회의를 출범해 제도 개선에 나선 상황이다. 당국은 보험업계에 해지율과 손해율 산정에 대한 세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번 개선안 내용을 연말 결산부터 회계에 적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지율 가정 방식과 관련해선 영향 평가 등을 종합해 논의를 좀 더 진행해야 하지만 대체적인 방향은 확정했다”고 말했다. 당국은 이번 보험개혁회의에서 무해지 보험 해지율뿐이니라 단기납 종신보험 해지율 가정, 연령대별 손해율 가정 등에 관한 개선안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은 납입 완료 시점의 해지율을 0%에 맞춰가는 게 핵심이다.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현재 보험사가 추정하는 해지율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보험사 수익은 급감하고 지급 여력 하락에 따른 충당금도 더 쌓아야 한다. 차라리 일률적인 기준을 주기보다 ‘예실차(예상금액과 실제 발생금액의 차이)’가 크게 난 보험사들을 상대로 시정 요구를 하는 게 맞는 접근법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익을 부풀렸다고 하는데 IFRS17의 원리상 이익을 부풀리면 예실차 손실을 보게 된다”며 “예실차가 크게 난 보험사들에 대해서만 ‘가정’을 지적하고 바꿔보는 게 어떠냐고 하는 게 맞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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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안을 적용하면 업계에 쓰나미급 충격이 가해지겠다고 주장한다. 무·저해지 보험에서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대형 손보사와 중형 손보사의 최선추정부채(BEL)가 최대 수천억원에 이를 것이라 예상이 나온다. 최선추정부채(BEL) 증가분은 보험 계약 마진(CSM) 감소로 이어지고 저 정도 부채규모라면 대다수 보험사가 대규모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본확충 부담이 대폭 늘어나는 중소형사는 도태되고 자본력이 있는 대형사만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보험사들은 당국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새 회계기준의 경착륙이 불가피하다고 하다고 우려한다. 보험부채는 과대평가하고 CSM 등 이익은 과소 계상하는 방식이어서 상당한 충격이 올 수 있다. 예외 규정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실제로 A사의 경우 현재 ‘예실차(예상금액과 실제 발생금액의 차이)’가 0%대인데 당국 안을 적용하면 20%대로 확대한다. 이를 부채로 잡아야 하는데 수천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당국이 가이드라인으로 회계 처리에 개입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실손보험 손해율 가정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을 때도 기준이 천편일률적이어서 현실과 맞지 않단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가이드라인이 나올 때마다 혼란에 시달리면서 ‘실손보험, 무해지 보험 다음엔 뭘까’ 겁난다는 아우성이 나올 정도다. 당국이 반복적인 개입으로 회계적 변동성을 키우면서 투자자 신뢰를 떨어트리고 있단 비판도 제기된다.
보험사 관계자는 “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때마다 재무제표를 바꾸네 마네 하는데 누가 재무제표를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보험사 관계사는 “보험사는 외국인 투자자가 많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수도 있다”며 “회계 제도 몰이해에 따른 준비 부족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주주 환원을 기반으로 하는 밸류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말에 이러한 회계 가정 변경이 이뤄지면 보험사 지급여력비율을 떨어트리는 조치이기 때문에 자본 비율 상위권인 보험사의 배당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